밤 11시, 采莓行館Caimei Hotel의 객실은 지나치게 안락해서 위험할 정도였다. 8층이라는 높이 덕분에 창밖으로는 대후의 전원 풍경이 짙은 남색의 바다처럼 낮게 깔려 있었고, 방 안은 은은한 호박색 조명이 감싸 안아 포근한 온기를 더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밀도 라텍스 매트리스의 탄성에 몸을 맡긴 채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빳빳하게 잘 말려진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쯤, 누군가 나직하게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홀린 듯 편의점으로 달려가 현지 과자와 대후 시내에서 미리 챙겨둔 딸기 디저트, 그리고 냉기가 서린 캔맥주 몇 캔을 전리품처럼 챙겨 돌아왔다. 짐을 풀 때의 소란스러움보다 더 밀도 높은 설렘이 작은 테이블 위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입속에서 굴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야, 너 아까 딸기 딸 때 표정 봤어? 거의 전쟁 치르는 줄 알았잖아."
치익, 맥주 캔을 따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낄낄거렸다. 오늘 하루의 탐험은 꽤나 고된 일정이었다. 연태사에서 마주한 벚꽃은 수줍은 듯 옅은 분홍색이었고, 2월의 묘리 공기는 피부에 닿을 때마다 기분 좋게 서늘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근데 진짜 웃긴 건, 그 먼 길을 가서 결국 기억에 남는 게 강기구기의 완탕이라는 거야. 그 죽순 들어간 소스가 진짜 예술이었지."
누군가 완탕의 맛을 묘사하며 입맛을 다셨다. 쫄깃한 피와 뜨거운 국물, 그리고 적당히 달큰했던 죽순의 식감이 다시금 혀끝에 되살아났다. 우리는 다시금 라텍스의 푹신함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 방 진짜 넓다. 셋이 굴러다녀도 남을 정도네. 아, 그리고 여기 베개 말이야. 采莓行館Caimei Hotel은 센스 있게 소프트랑 하드 두 종류를 다 줘서 좋더라. 난 딱딱한 게 좋아서 그걸로 골랐어."
"그니까. 아까 그 커다란 욕조에 몸 담갔을 때 진짜 천국인 줄 알았어. 호텔 위치가 대후 중심가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그런지, 아침에 봤던 그 안개 낀 풍경이 계속 생각나. 마치 한 폭의 수묵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어."
우리는 그렇게 낮에 보았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았다. 대후 와이너리의 달콤한 포도 향기, 길가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들꽃, 그리고 로비에서 체크인할 때 느꼈던 담백한 친절함까지. 거창한 감동은 없었지만, 그저 좋았다는 말과 나쁘지 않았다는 말들이 맥주 거품처럼 가볍게 오갔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던 시간들이, 이 아늑한 방 안에서 야식과 함께 다시 재구성되고 있었다.
"내일은 그냥 늦잠 자자. 알람 다 끄고, 이 푹신한 침대에서 한 번만 더 뒹굴거리다 나가는 거야."
"완전 찬성. 원래 여행의 완성은 호텔 침대에서 게으름 피우는 거잖아."
우리는 서로의 어깨가 닿는 거리에서 낄낄거리며, 내일의 평화로운 나태함을 미리 예약했다.
배부름 뒤에 찾아온 적막
빈 캔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접시 위에는 붉은 딸기 조각 몇 개만이 외롭게 남았다. 대화의 밀도가 낮아지자 방 안에는 기분 좋은 정적이 찾아왔다. 창밖의 대후 시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했고, 8층의 높이는 세상과 우리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을 만들어주었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우리를 더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포근한 막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의 푸른 빛에 의지해 오늘의 기록들을 정리했다. 2월의 서늘한 공기가 창틈으로 아주 살짝 스며들었지만, 두툼한 이불 속에 발을 깊숙이 집어넣으니 충분했다. 무용한 대화와 무익한 음식들이 채워준 밤이었다. 무언가를 더 얻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저 여기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시간.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깊게 잠의 늪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딸기 향이 밴 손끝.
- 강기구기의 완탕과 육원, 달큰한 죽순 소스의 조합을 꼭 경험해 보세요.
- 대후 시내의 작은 편의점에서 파는 제철 딸기 푸딩을 야식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