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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기 속에서 발견한 다섯 가지의 조각들

누가 먼저 로비를 찾는지 내기를 했다. 결과는 모두의 패배였다. 우리는 엉뚱한 조각상 앞에 멈춰 서서 십 분 동안 말없이 그것만 바라봤다. “이게 정말 예술일까, 아니면 우리의 길치 본능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누군가의 나지막한 농담에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계획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세워두면 반드시 어긋나고, 그 어긋난 지점에서 뜻밖의 재미가 시작된다. 1월의 묘리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공기는 투명하게 씻겨 내려갔고, 산등성이는 낮게 깔린 안개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게 길을 잃은 채로 竹美山閣 藝術園區의 품에 들어갔다.

낯선 공기 속에서 발견한 다섯 가지의 조각들

길을 잃기 딱 좋은 갤러리의 정적: 로비 옆 예술 전시관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유럽식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몸을 깊숙이 묻으면 오래된 서양 음악이 공기 중을 유영하듯 흘러나온다. 유명 작가의 그림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지만, 우리는 작품의 의미보다 소파 가죽의 서늘한 질감과 빛줄기를 타고 느리게 하강하는 먼지 입자에 더 집중했다. 무용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더없이 완벽했다.

대리석 욕조가 선사한 온도차의 유희: 객실에 마련된 대리석 듀얼 풀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냉탕과 온탕의 비율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며 피부에 닿는 온도를 설계하는 과정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녹였다가 서늘한 물로 옮겨갈 때, 피부 위로 비단 한 겹을 바른 듯 매끄러운 촉감이 남았다. 레몬 버베나 향의 비누 냄새가 욕실의 눅눅한 습기와 섞여 콧등에 은은하게 머물렀다.

세상을 지워버린 1월의 하얀 안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온통 무채색의 하얀색이었다. 태안의 산안개가 유리창을 완전히 덮어버려, 마치 세상에 우리 방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먼 산의 능선이 한 줄씩 수묵화처럼 드러나는 과정은 정교하게 연출된 연극 같았다. 우리는 침대의 온기 속에 파묻혀 그 느린 변화를 한참 동안 구경했다.

미각을 깨우는 완탕의 뜨거운 위로: 마을로 내려가 70년 전통이라는 강기구기 식당을 찾았다. 얇은 피 속에 갇혀 있던 육즙이 입안에서 툭 터지며 짭조름한 국물과 어우러지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함께 주문한 육원의 달콤한 소스와 말린 죽순의 아삭한 식감은 1월의 쌀쌀한 기운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에 마음속 응어리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죽림의 숨소리를 닮은 정적의 시간: 竹美山閣 藝術園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차 공간에 앉았다. 대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친구 셋이 모여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찻잔에서 올라오는 뽀얀 온기가 손바닥을 적셨고, 그 정적이 어색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흩어진 순간들이 모여 완성된 풍경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거창한 다짐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먹고, 이름 모를 그림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다. 저녁 식사 후 들려오던 원주민들의 생동감 넘치는 공연 소리와 1월의 차가운 공기, 그리고 대리석의 단단한 촉감이 교차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침묵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았을 때, 여행은 비로소 여행다워진다.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온기,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정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레몬 버베나 향이 밴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 강기구기의 완탕은 꼭 드셔보길 권한다. 국물 한 모금에 겨울의 추위가 잊힌다.
  • 객실 내 대리석 욕조에서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며 자신만의 탕도를 찾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