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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호흡이 빚어낸 다정한 거리

62번 국도의 끝자락에 닿았을 때, 피부에 닿는 공기는 이미 서늘한 가을의 옷을 입고 있었다. 9월의 묘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계절의 바뀜을 알렸고, 우리는 그 서늘함을 따라 日出溫泉渡假飯店의 문을 열었다. 안내받은 더블 스위트 룸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편백 향과 숲의 내음이 섞인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 깊은 침묵에 잠겼다. 소파에서 침대까지의 거리는 고작 세 걸음 남짓. 하지만 그 짧은 거리조차 우리는 아주 천천히,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창밖으로는 묘리의 웅장한 산세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었고, 방 한편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욕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적이 어색하지 않은 건, 우리가 같은 풍경을 보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호텔에서 준비해둔 나무 나막신을 신어보았다. 바닥에 닿을 때마다 '딱, 딱' 하고 울리는 건조한 나무 소리가 정적을 기분 좋게 깨뜨렸고, 우리는 그 소리에 맞춰 아주 조금씩 미소 지었다. 억지로 대화를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공간. 발리풍의 이국적인 건축 양식이 묘리의 짙은 녹음과 어우러져, 마치 산속에 숨겨진 작은 섬에 들어온 것 같은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욕조로 향하는 짧은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고요한 호흡 소리를 들었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말 없는 이해가 흐르는 온도의 시간

42도의 탄산수소염천에 몸을 깊숙이 담갔다. 투명한 물은 아무런 냄새가 없었지만, 피부에 닿는 감촉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웠다. 마치 아주 얇은 비단 한 겹을 온몸에 두른 듯한 느낌, 이른바 '미인탕'이라 불리는 이유를 온몸의 세포가 먼저 알아차렸다. 따뜻한 물결이 부드럽게 몸을 감싸 안을 때,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온도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우리가 딱 좋다는 것을.

뜨거운 물속에서 우리는 아주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미래나 복잡한 감정의 타래를 푸는 대화가 아니었다. 그저 물의 온도가 적당하다거나, 손끝에 닿는 물의 질감이 신기하다는 식의 사소한 관찰들이었다. 탄산수소염천의 매끄러운 촉감이 피부를 타고 흐를 때마다, 일상 속에서 날카롭게 서 있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둥글게 뭉툭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탕 속에 누워 하얀 김이 서린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산새의 지저귐이 물소리와 섞여 들어와 귓가를 간질였다. 우리는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같은 순간에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확신. 그것은 '사랑'이라는 흔한 단어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밀도 높은 감각이었다.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닿은 서늘한 공기는 오히려 따뜻했던 물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젖은 피부 위로 내려앉는 가을바람은 쾌적했고, 우리는 그 온도 차이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더 깊이 갈구하게 되었다.

나란히 흐르는 각자의 고요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요를 향유했다. 당신은 테라스에 앉아 웬수이 계곡을 낮게 덮은 우윳빛 안개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나는 그 곁에서 읽다 만 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호텔 마당에 심어진 이국적인 야자수들이 묘리의 거친 산등성이와 대조를 이루며 서 있는 풍경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으면서도 그래서 더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렀지만, 각자의 생각이라는 깊은 방 속에 잠시 머물렀다. 그것은 외로운 고립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는 다정한 존중이었다.

조식으로 제공된 고구마 죽의 온기가 몸속으로 부드럽게 퍼져 나갔다. 함께 곁들여 나온 두부루의 짭조름한 풍미가 잠들어 있던 입맛을 정직하게 깨웠다. 화려한 성찬은 아니었지만, 투박하고 소박한 맛이 오히려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죽 한 그릇을 비워내는 동안 우리는 다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맛있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여행의 목적이 꼭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그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느끼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공유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짐을 쌌다. 올 때보다 짐의 부피는 비슷했지만,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이곳의 온천수에 마음의 찌꺼기를 모두 녹여 보내고, 남은 여유만을 일상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서늘한 산바람이 뺨을 스쳤고, 우리는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 조식으로 제공되는 달콤한 고구마 죽과 짭조름한 두부루의 조화를 꼭 경험해 보세요.
  • 밤의 정적 속에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묘리의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해 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