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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정적을 깨는 비밀번호 소리와 붉은 벽돌의 환대

백사둔역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 12월의 묘리현 공기는 서늘하면서도 바삭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건조한 흙내음과 어디선가 날아온 마른 찻잎의 향기가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한낮의 햇살이 낮게 깔린 골목 사이로 부서져 내릴 때쯤, 우리는 内之島旅宿의 대문 앞에 섰다.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비밀번호를 하나씩 천천히 누르자, '철컥' 하는 기분 좋은 금속음과 함께 닫혀 있던 세계가 열렸다. 발밑으로 펼쳐진 것은 세월의 손길에 닳고 닳아 매끄러워진 빨간 벽돌 길이었다. 전통적인 산허위안 구조의 중정은 마치 도시의 소음을 걸러내는 거대한 필터처럼 고요했고, 그 정적 속에 서 있자니 비로소 우리가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왔음이 실감 났다.

우리가 짐을 푼 곳은 104호 발리풍 객실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이국적인 나무 향과 따뜻한 조명이 묘리현의 겨울 공기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표준 더블 침대에 몸을 던지자, 빳빳하게 잘 마른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피부에 닿았다.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에어컨의 진동과 삼성 65인치 TV의 검은 화면에 희미하게 비친 우리의 모습.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도, 무언가 특별한 감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그저 천장의 섬세한 무늬를 세거나 창밖으로 앙상하게 가지를 뻗은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냥 이렇게 있어도 괜찮구나'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계획된 일정보다 훨씬 더 다정한, 완벽한 시작이었다.

오후 11시, 보글거리는 온기 속에 녹아든 서툰 웃음소리

깊은 밤, 거실 한복판에서는 핫팟 패키지의 커다란 냄비가 하얀 김을 뿜어내며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12월의 밤공기는 창밖에서 매섭게 웅크리고 있었지만, 거실 안은 식욕을 돋우는 진한 육수 향과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찼다. 소니 75인치 대형 TV에서 흘러나오는 유튜브 영상의 푸르스름한 빛이 배경이 되었고, 우리는 그 빛을 등진 채 서로의 얼굴에 맺힌 수증기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자 낮에 들렀던 강기구기에서 맛본 완탕의 기억이 겹쳐졌다. 하지만 이곳 内之島旅宿에서 함께 나누는 이 뜨거운 국물에는, 타인의 친절함과는 또 다른 결의 내밀한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수동 마작 테이블은 오늘 밤 우리만의 작은 연회장이 되었다. 마작 패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우리가 챙겨온 달콤한 간식과 시원한 음료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게임기 스위치를 켜고 화면 속 세상에 몰입하려 했지만, 정작 우리의 관심은 서로의 서툰 컨트롤 실력과 엉뚱한 움직임에 쏠려 있었다. 큭큭거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거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채웠다. 완벽한 계획이나 거창한 이벤트는 없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심심하면 게임을 하는 지극히 단순한 흐름. 하지만 묘리현의 깊은 밤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리듬에 천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억지로 관계의 거리를 좁히려 애쓰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온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 내일 아침 우리를 깨울 따뜻한 흰죽과 소박한 반찬들을 상상하며, 우리는 적당하고 기분 좋은 거리감을 둔 채 깊은 잠을 청했다.

창가에 맺힌 작은 이슬이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