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묘리는 온 세상이 우윳빛 안개에 잠겨 있었다. 서서히 덮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경계가 흐릿하게 지워지는 그런 안개였다. 묘리 역에서 내려 좁고 낯선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길을 잃었다는 불안함보다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다 발견한 新興大旅社의 투박한 간판. 화려한 네온사인 하나 없었지만, 천장에 둥지를 튼 제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 입구는 마치 다른 시간대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정말 여기서 자는 거야?" 그녀의 낮은 의구심 섞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밀고 들어서는 순간 눅눅한 겨울 공기는 사라지고 오래된 나무와 빛바랜 종이 냄새가 섞인 포근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계획 없이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이 투박한 환대가 오히려 정답처럼 느껴졌다.
테라조 바닥이 건네는 정직한 위로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발끝에 닿은 것은 서늘한 테라조 바닥이었다. 요즘의 매끄러운 대리석과는 다른, 작은 돌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힌 그 바닥은 걷는 내내 딱딱하고 정직한 감각을 전달했다. 주인장인 로 아빠는 서두르지 않는 느릿한 말투로 이곳이 60년 전 잡화점이었을 때부터 사람들의 쉼터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안내한 중정은 이 건물의 심장 같았다. 1940년대와 50년대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은 그곳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었고, 2월의 흐린 빛이 수직으로 내려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우리는 그 정적 속에 서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근처 '강기구기'에서 사 온 완탕과 고기완자를 나눠 먹으며, 얇은 피 속에 갇힌 탱글한 새우의 식감과 달큰한 죽순의 맛을 음미했다. 화려한 코스 요리보다 낡은 방 안에서 나누는 이 소박한 온기가 우리를 더 깊게 연결해주었다.
철제 계단의 리듬과 온기의 대화
밤이 깊어지자 新興大旅社는 낮과는 다른 은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객실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은 우리가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칭, 칭' 하는 맑은 금속음을 냈다. 숨길 수 없는 소리, 우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얼마나 천천히 서로의 보폭을 맞추고 있는지를 계단이 대신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오래된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된 욕조였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어느 집에서 본 듯한 투박한 무늬가 정겨웠다.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자 하얀 김이 서리며 욕실은 순식간에 몽환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비치된 샴푸의 향긋함이 머릿결을 부드럽게 감싸는 동안, 벽 너머로 로 아빠가 다른 여행객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홍콩에서 온 이, 일본에서 온 이, 그리고 수십 년 전 이곳을 찾았던 이름 모를 이들의 흔적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우리는 욕조 끝에 나란히 앉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사소한 고백들을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았다.
불 꺼진 방,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고요
방의 불을 끄자 창밖 가로등의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방 안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였다. 바스락거리는 낡은 시트의 촉감과 함께 누운 침대는 아주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몸을 정직하게 받쳐주는 단단함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낡은 벽지 사이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을 느꼈다. 묘리의 겨울밤은 지독하리만큼 조용했다.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 외에는 오직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누군가는 이곳이 너무 낡아 불편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적당한 불편함이 오히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잘 꾸며진 호텔에서는 잘 보여야 한다는 긴장감이 생기지만, 여기서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워 있어도 충분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리듬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낡은 공간이 주는 위로 속에서 마음의 벽을 조금 더 낮출 수 있었다.
낡은 열쇠를 반납하며 나눈 짧은 목례 속에 겨울의 온기가 남았다.
- 묘리 역 근처 '강기구기'에서 육즙 가득한 고기완자와 완탕을 꼭 맛보세요.
- 철제 계단을 오를 때, 서로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걸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