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공기와 덜컹거리는 설렘
동우메다역 4번 출구를 나서는 순간, 3월의 오사카가 가진 특유의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우리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기 다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한 명은 구글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호하게 앞장섰고, 다른 한 명은 길가 편의점의 화려한 간판들에 마음을 빼앗겨 자꾸만 뒤처졌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여행 가방의 바퀴가 보도블록 틈에 끼어 덜컹거리는 진동을 손끝으로 느꼈다. 목적지까지는 고작 3분 거리. 하지만 우리는 이미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를 두고 유치한 내기를 시작했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편의점 간식 쏘기!"라는 외침과 함께, 가벼운 경쟁심이 섞인 공기가 눅눅한 거리의 분위기를 금세 활기차게 바꾸어 놓았다.
우연히 멈춰 선 시간의 조각
호텔로 향하던 길, 어느 작은 가게 앞에 전시된 풍경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히나마츠리를 맞아 가지런히 놓인 작은 인형들이었다. 붉고 흰 비단옷을 입은 인형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도심의 소음 속에서도 묘하게 평온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정적인 풍경 앞에서 이번 여행의 벚꽃 개화 예상일을 두고 한참 동안 논쟁을 벌였다. "분명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거야"라는 확신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신중함이 부딪혔다. 결국 누구의 예측이 맞을지는 알 수 없는 무용한 대화였지만, 그 찰나의 멈춤이 여행의 속도를 기분 좋게 늦춰주었다. 빽빽하게 짜여 있던 계획표는 어느새 가방 구석에서 의미 없는 종이 뭉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을 지우는 안식의 타워
마침내 도착한 APA Hotel & Resort Osaka Umeda Eki Tower의 로비는 압도적인 웅장함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상승해 마주한 객실은 정갈함 그 자체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 침대에 몸을 던지느냐로 다시 한번 작은 소동을 벌였다. '클라우드 핏 그랜드'라는 이름의 침대는 마치 구름 속에 파묻히는 것처럼 우리의 몸을 깊숙이, 그리고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11제곱미터의 스탠다드 룸은 누군가에게는 좁게 느껴질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고 아늑한, 완벽한 은신처였다.
욕실의 '볼리나 와이드 플러스' 샤워 헤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물줄기는 피부에 닿는 촉감이 마치 안개처럼 부드러웠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하루의 먼지를 씻어낸 뒤, 우리는 곧장 '겐요노유' 대욕장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낮 동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천천히 풀려나갔다. 특히 노천탕에서 마주한 서늘한 밤공기와 대비되는 뜨거운 물의 온도 차이는 정신이 맑아지는 쾌적함을 선사했다.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눈을 감고, 오직 물소리와 바람 소리에만 집중하며 깊은 휴식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저녁 식사는 3층 '라 베란다 프리미어' 뷔페에서 해결했다. 60가지가 넘는 다채로운 요리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현지 요리 한 접시가 허기를 기분 좋게 채워주자, 비로소 여행의 실감이 났다. 식후에는 34층에 위치한 빅리만 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밑으로 펼쳐진 우메다의 야경은 마치 검은 비단 위에 쏟아놓은 보석 가루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창한 깨달음이나 감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이곳에 함께 누워 있고, 같이 먹고, 함께 씻었다는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올랐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느리게 이 시간을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벚꽃 잎 하나가 밤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 겐요노유 대욕장은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운영하니 이른 아침의 정적을 즐겨보길 권한다.
- 라 베란다 프리미어 뷔페의 현지 메뉴는 종류가 많으니 조금씩 여러 번 담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