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어린 밤, 누가 먼저 배고프다고 했더라
8월의 오사카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늪처럼 눅눅했다. 피부에 닿는 바람조차 미지근한 습기를 머금어, 유카타를 입고 우메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내가 사람인지 아니면 찜통 속에서 쪄지고 있는 만두인지 헷갈리는 지점에 다다랐다. 눈앞에는 방금 전까지 보았던 불꽃놀이의 잔상이 화려한 얼룩처럼 아른거렸고, 얇은 신발 속 발가락들은 이미 감각을 잃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지친 기색으로 입을 다물고 Hotel Granvia Osaka의 로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JR 오사카역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여행에서 내린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고층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압력을 느끼며, 우리는 비로소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되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에어컨 온도를 최저로 낮췄다. 날카롭고 차가운 공기가 피부의 끈적한 열기를 순식간에 앗아가는 그 쾌적함은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하지만 안도감 뒤에는 곧바로 허기가 찾아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역과 연결된 통로 덕분에 눅눅한 바깥 공기를 다시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구원 같았다. 로손에서 급하게 집어 든 가라아게와 탱글탱글한 푸딩, 그리고 캔맥주 몇 캔이 든 비닐봉지가 달그락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빳빳하고 하얀 호텔 시트 위에 무심하게 던져진 비닐봉지들은 마치 치열한 하루를 버텨낸 우리들의 전리품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봉지들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앉았다.
짭조름한 튀김 조각과 무용한 헛소리 사이
"야, 아까 그 불꽃놀이 때 너 내 발 밟은 거 기억나?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치익, 맥주 캔을 따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깼다. 친구 하나가 기름진 닭튀김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투덜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냉기가 서린 캔을 이마에 갖다 댔다. 금속의 차가움이 머릿속의 열기까지 식혀주는 기분이었다.
"밟은 게 아니라 내가 밀려난 거야.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너야말로 유카타 입고 걷는 게 그렇게 힘들다고 계속 징징거렸잖아."
"징징거린 게 아니라 생존 신고를 한 거지. 진짜 발가락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고. 근데 여기 침대 진짜 좋다. 그냥 이대로 여기서 계속 누워 있고 싶어."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멍청했던 선택들을 끄집어내어 안주 삼아 씹어댔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됐을 좁은 골목을 헤맨 일,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산 지 10분 만에 다 녹여 먹어 손등이 끈적였던 일 같은 것들. 튀김의 짭조름한 맛과 맥주의 쌉싸름함이 입안에서 엉키며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호텔 방의 조명을 낮추자, 통창 너머로 오사카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우메다의 불빛들은 마치 검은 벨벳 위에 쏟아진 보석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화려한 풍경보다 눈앞의 푸딩 하나를 누가 더 크게 떠먹느냐는 사소한 경쟁에 더 집중했다.
"내일은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조식 먹고 여기서 뒹굴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일 아침에 알람 울리면 네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깨울걸?"
우리는 서로를 타박하면서도 끊임없이 맥주 캔을 주고받았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다는 안도감, 에어컨 바람의 서늘함, 그리고 닭튀김의 고소함. 그 세 가지만으로 충분히 완벽한 밤이었다.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의 온도
음식이 바닥나고 대화의 밀도가 서서히 낮아질 때쯤, 방 안에는 기분 좋은 정적이 찾아왔다. 빈 캔들이 탁자 위에 불규칙하게 놓여 있었고, 시트 위에는 작은 빵가루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곳에서는 그 무질서함이 오히려 여행자의 특권처럼 느껴져 편안했다. 트윈 베드의 빳빳한 리넨 촉감이 팔에 닿았다. 몸을 깊숙이 파묻자 적당한 탄성감이 전신을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창밖의 소음은 고층의 높이 덕분에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들의 낮은 웅성거림만이 이곳이 여전히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임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런 의미 없는 농담들이 공중에 흩어지다 서서히 가라앉았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여행의 진짜 목적이 유명한 관광지를 도장 깨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무용한 휴식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눈을 감으니 낮에 보았던 불꽃의 잔상과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겹쳐 들렸다. 8월의 무더위가 여전히 창밖에서 웅크리고 있겠지만, 이 방 안만큼은 완벽하게 통제된 평화가 있었다. 충분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밤이었다. 내일은 조금 더 늦게, 아주 게으르게 일어나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도시의 불빛이 자장가처럼 깜빡이는 밤이었다.
- 로손 편의점의 가라아게쿤과 시원한 캔 하이볼의 조합을 추천한다.
- 고층 객실 창가에서 야경을 배경 삼아 먹는 쫀득한 일본식 푸딩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