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Hotel Hillarys Shinsaibashi

서로의 보폭을 가늠하는 서늘한 공기

서로의 보폭을 가늠하는 서늘한 공기

9월의 오사카는 여전히 끈적거렸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는 불쾌한 습도와 도시의 소음이 뒤섞인 거리. 신사이바시역 6번 출구를 나와 3분쯤 걸었을까, Hotel Hillarys Shinsaibashi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에어컨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으며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우리는 나란히 섰지만, 어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있었다. 로비 한편에 적힌 '인연'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거창한 단어라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지만, 체크인을 도와주는 직원의 정중한 손길과 건네받은 카드키의 매끄러운 촉감은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낯선 거리의 간판을 구경하느라 자꾸만 멈춰 선다. 로비의 낮은 조명 아래서 우리는 그 속도 차이를 굳이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소음의 껍질을 벗겨내는 긴 쉼표

객실로 향하는 복도는 도시의 소란함을 잠재우는 긴 쉼표 같았다. 바퀴 달린 캐리어가 두툼한 카펫 위를 구르는 소리가 둔탁하게 변하며, 세상의 소음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벽면에는 일본 전통 건축의 정갈한 선과 현대적인 아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지점을 가만히 응시하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이 마치 우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은은한 조명이 발밑을 비추고, 차분하게 고요해지은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발소리가 작아질수록 서로의 숨소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졌고, 우리의 리듬은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14제곱미터, 오직 우리만 남겨진 세계

디럭스 더블룸의 문을 열자, 14제곱미터의 안온한 세계가 펼쳐졌다. 누군가에게는 좁은 공간일지 모르나,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눕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크기였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시트의 시몬스 침대였다. 그 위로 몸을 던지자 적당한 탄성이 몸을 밀어 올렸다가 이내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짐을 푸는 동작은 한없이 느릿했다. 양말을 벗고 셔츠를 옷걸이에 거는 단순한 일들이 평소보다 오래 걸린 것은, 아마도 이 고요함이 깨지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낮에 보았던 억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9월의 끝자락, 바람에 흔들리던 은빛 물결과 곧 다가올 달맞이 시즌에 대한 소소한 대화들. 가습 공기청정기가 내뱉는 낮은 기계음은 오히려 정적을 완성하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카드키를 문에 동시에 대려다 손등이 툭 부딪혔을 때, 짧은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동시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접촉이 방 안의 온도를 1도쯤 올린 것 같았다. 보들보들한 수건의 촉감과 시트의 서늘함이 교차하는 이 작은 방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리듬이 비슷해졌음을 느꼈다. Hotel Hillarys Shinsaibashi에서의 밤은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유리창 너머로 흐르는 타인의 시간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자, 신사이바시의 밤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화려한 네온사인, 바쁘게 교차하는 사람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창밖의 세계는 여전히 빠른 템포로 회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꺼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이곳은 완전히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우리는 창틀에 나란히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 소란스러운 거리 속에 우리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마치 아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옆에 누군가의 온기가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도시의 불빛이 방 안의 어둠과 섞여 묘한 무늬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무늬가 천천히 변하는 것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밖은 소란스러웠지만 안은 고요했다. 그 극명한 대비가 오히려 이곳을 더 안전한 요새처럼 느끼게 했다. 다시 거리로 나갈 때는 아마 다시 각자의 보폭으로 걷게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같은 속도로 숨 쉬고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식어버린 찻잔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 대욕장에서 도시의 먼지를 씻어내고 시몬스 침대의 탄성에 몸을 맡겨보길 권한다.
  • 신사이바시역 6번 출구에서 호텔까지 천천히 걸으며 9월의 공기를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