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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오사카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3월의 날카로운 공기가 뺨을 때렸다. 코끝이 찡해지는 서늘함 속에 누가 지도를 챙겼느냐를 두고 유치한 책임 공방

JR 오사카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3월의 날카로운 공기가 뺨을 때렸다. 코끝이 찡해지는 서늘함 속에 누가 지도를 챙겼느냐를 두고 유치한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Hotel Vischio Osaka까지는 도보로 겨우 5분. 그 짧은 거리조차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두고 세 번이나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입술이 파르르 떨릴 때쯤, 호텔 입구의 정갈한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비로소 팽팽했던 긴장이 느슨하게 풀렸다. --- 오전 7시의 '베르데 카사'는 투명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갓 구워낸 오믈렛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하얀 김에서 고소한 버터 향이 났다. 포크 끝으로 살짝 누르자 탱글하게 밀려 나오는 탄력이 손끝에 전해졌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질감과 곁들여진 제철 채소 구이의 은은한 단맛이 혀끝을 감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누가 더 지독한 늦잠꾸러기였는지에 대해 꽤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 "내일이면 벚꽃이 필걸? 느낌이 와." "말도 안 돼. 예보 못 봤어? 최소한 다음 주야." 스마트폰 화면 속 개화 예상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우리는 내기를 걸었다. 지는 사람이 저녁 식사비를 전부 내기로. 사실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누군가의 지갑이 털린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비웃으며 접시 바닥이 보일 때까지 식사를 이어갔다. --- 호텔 이름인 '비스키오'가 이탈리아어로 겨우살이를 뜻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행운과 안전을 가져다주는 상징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친구 하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행운? 우리가 여기 온 게 행운이라면, 내일 벚꽃이 피는 게 더 큰 기적이겠네." 그 유치한 연결고리가 왜 그렇게 웃겼는지, 우리는 한참 동안 낄낄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 로비 천장의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의 파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소란스러운 도심의 소음이 유리벽 너머로 아득하게 밀려났다. 중정의 나무들이 미풍에 아주 조금씩,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빛의 흐름을 쫓는 시간. 여행 중 가장 무용한 시간이 사실은 가장 밀도 높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이곳의 정적 속에서 깨달았다. --- 객실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비-에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몸이 깊고 포근하게 파묻혔다. 빳빳하게 잘 관리된 시트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하루 종일 오사카 시내를 헤매느라 발바닥이 욱신거렸지만, 이 안락한 품속에 누워 있으니 그 통증마저 기분 좋은 훈장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내일 아침까지 누워 있고 싶다는 게으른 욕망이 차올랐다. --- 도명지 천만궁으로 향하는 길, 붉고 하얀 매화 800그루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벚꽃보다 먼저 도착한 봄의 전령들이었다.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매화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좁은 골목으로 무작정 들어섰고, 결국 길을 잃었다. 하지만 막다른 길 끝에서 발견한 작은 찻집의 눅눅하고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길을 잃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뜻밖의 다정한 장소였다. --- 다시 ホテルヴィスキオ大阪로 돌아오는 길, 탁 트인 로비의 공간감이 우리를 포근하게 맞았다. 체크아웃 전날 밤, 우리는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번 여행의 최악과 최고를 꼽았다. 결국 우리가 꼽은 최고의 순간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다 같이 침대에 누워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적당한 쾌적함과 안온함이 주는 힘이 우리 사이의 거리마저 좁혀주었다. 반쯤 남은 미지근한 커피 잔 속에 오후의 햇살이 고여 있었다. - 베르데 카사의 이탈리안 조식, 특히 갓 만든 오믈렛은 꼭 먹어봐. - JR 오사카역에서 도보 5분 거리니까, 짐이 많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