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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방 안으로 스며든 베이지색 침묵

## 오후 3시, 방 안으로 스며든 베이지색 침묵 손끝에 닿은 기차표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펴보려 했지만, 이미 꺾여버린 끝부분은 고집스럽게 말려 있었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제이알 유니버설 시티역에서 내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1분쯤 걸었을까, ORIENTAL HOTEL UNIVERSAL CITY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간을 감싸 안은 차분한 어스 컬러의 톤이었다. 현대적인 세련미가 흐르면서도 결코 차갑지 않은, 마치 잘 가꾸어진 숲의 흙빛을 닮은 색조였다. 곳곳에 배치된 검은색 프레임들은 자칫 흩어질 수 있는 시선을 단단하게 잡아주며 공간의 중심을 세우고 있었다. 과하지 않은 정돈됨, 내가 늘 갈망하던 종류의 적당함이었다. 배정받은 프리미어 트윈 룸의 문을 열자, 정제된 쾌적한 공기가 피부에 먼저 닿았다. 은은한 우디 향이 섞인 공기는 여행자의 긴장을 부드럽게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놓인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감촉이 살결에 닿는 순간,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면의 질감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당신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냥 여기 계속 있고 싶어."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창밖은 12월의 오사카, 평균 기온 8.6도의 서늘한 공기가 도시를 짓누르고 있겠지만, 이 방 안만큼은 완벽하게 조율된 온도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캐리어 바퀴 하나가 두툼한 카펫에 살짝 걸려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잠시 그 작은 소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동시에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소음이 정적을 깨는 방식이 무척 다정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저 베이지색 벽지 속에 섞여 누워 있는 시간.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곳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의 그 행위는 꽤 근사한 예술처럼 느껴졌다. ## 오후 11시, 도시의 소음이 멎은 자리 오사카 성의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돌아오는 길, 12월의 밤공기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때쯤, 당신이 내 손을 꽉 잡았다. 두툼한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희미한 온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들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사람들의 들뜬 소란함이 가득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화려한 장식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겨울밤의 공중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우리는 그 소음의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우리만의 작은 섬인 オリエンタルホテル ユニバーサル・シティ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산 타코야키가 종이 그릇 속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을 데울 듯한 열기가 겨울밤의 추위를 잠시 잊게 했다. 한 입 베어 물자 겉은 바삭했고, 속은 거의 데일 정도로 뜨거운 반죽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리는 서로의 입김을 빌려 뜨거운 속살을 식히며 킥킥거렸다. 짭조름한 소스와 춤추는 가쓰오부시의 향이 차가운 겨울밤의 냄새와 섞여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거창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맛은 혀끝에 정확하게 각인되었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허기,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 그것이 주는 충만함은 그 어떤 성찬보다 풍요로웠다. 호텔 라운지로 돌아오니 다시 그 특유의 정적과 차분함이 우리를 맞이했다. 소란스러웠던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분리된, 오직 우리만을 위한 안식처. 방으로 돌아와 조명을 낮추자, 어두워진 공간 속에서 창밖의 도시 불빛들이 작은 점이 되어 흩어졌다. 당신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고, 나는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당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특별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같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돌아올 곳이 이렇게 포근하다는 안도감이면 충분했다. 침대 속으로 깊숙이 몸을 밀어 넣자, 발끝부터 전해지는 몽글몽글한 온기가 기분 좋게 차올랐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쾌적함, 잘 정돈된 공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아마 나는 똑같이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낼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이고도 낭만적인 여행의 방식이니까.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며, 우리는 깊은 잠의 숲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