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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가득한 오후, 유카타를 둘러싼 유치한 전쟁

## 습기 가득한 오후, 유카타를 둘러싼 유치한 전쟁 "야, 너 진짜 그 유카타 입고 나갈 거야? 지금 밖은 그냥 찜통인데!" 지수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며 쏘아붙였다. 나는 거울 속, 눅눅하게 몸에 감겨 오는 면직물의 감촉을 느끼며 고집스럽게 옷깃을 매만졌다. "분위기 내야지. 여기까지 와서 티셔츠에 슬리퍼 신을 순 없잖아. 이건 낭만이라고." 내 말에 옆에서 짐을 싸던 민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낭만? 분위기 내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그게 더 분위기 있겠네. 너 지금 딱 김밥처럼 말려 있어, 아주 꽉!" "김밥? 이 고급스러운 무늬가 김밥으로 보이냐? 너야말로 그 형광색 셔츠 뭐야, 신호등인 줄 알겠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멈춰 서겠네!" 우리는 서로의 패션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며 낄낄거렸다. 8월의 오사카는 숨이 막힐 듯 습했지만, 그 불쾌함마저 여행의 양념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 불친절한 계절 속에서 어떻게든 즐거움을 쥐어짜 내기로 내기라도 한 사람들 같았다. ## 도시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안식처 문을 열고 들어선 帝国ホテル 大阪의 공기는 밖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던 땀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우리가 묵은 레귤러 플로어 스탠다드 룸은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안식처였다. 손끝에 닿는 침대 시트의 빳빳하고 매끄러운 감촉, 그 위에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는 적당한 탄성은 마치 도시의 모든 긴장을 흡수해 주는 거대한 스펀지 같았다. 창밖으로는 짙은 남색으로 물든 강물이 도시의 불빛을 잘게 쪼개어 품고 있었다. 리버뷰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물은 조금 달랐다. 소란스러운 오사카의 중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세상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 남은 고요한 갯벌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방 한구석에는 도어맨 복장을 한 스누피 소품이 툭 놓여 있었다. 帝国ホテル 大阪라는 이름이 주는 묵직한 역사와 권위,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작은 강아지 캐릭터의 엉뚱한 부조화. 나는 그 지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너무 진지하기만 한 공간은 때로 숨이 막히지만, 이런 적당한 위트가 섞여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 눅눅했던 유카타를 벗어 던지고 보드라운 가운으로 갈아입었을 때, 비로소 여행의 진짜 목적지가 이곳임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보러 가는 여정이 아니라, 이 공간에 머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 새벽 두 시,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진심 "근데, 아까 불꽃놀이 진짜 예쁘긴 하더라." 민호가 얼음이 가득 담긴 잔을 천천히 흔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부드럽게 깼다. "응. 근데 난 그냥 여기 돌아와서 에어컨 바람 쐬는 게 훨씬 좋았어." 내가 나직하게 대답하자, 지수가 내 옆으로 파고들며 덧붙였다. "나도. 밖에서는 그냥 '와' 하고 감탄만 했는데, 여기 누워 있으니까 이제야 좀 살 것 같아. 우리 내일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냥 이 방에서 썩자." "찬성. 늦잠 자고, 조식 천천히 먹고, 그냥 여기 계속 누워 있자." 낮의 소란스러움과 유치한 논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낮은 숨소리와 진심 어린 대화들만 남았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놀리지 않았다. 천장에 비친 희미한 조명을 보며, 아주 오래전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 놓았다. 특별한 깨달음이나 거창한 결론은 없었다. 다만, 시원한 공기와 푹신한 침대, 그리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편안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삶이 늘 특별한 이벤트로 가득 찰 필요는 없다. 때로는 이렇게 좋은 호텔 방에 누워,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새벽을 보내는 것이 가장 완벽한 휴식일지도 모른다. 시트의 서늘함이 발끝에 닿았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8월의 오사카는 덥다. 무리하게 걷기보다 호텔 라운지에서 강물을 보는 시간을 가질 것. - 스누피 룸의 엉뚱한 위트를 즐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의 사치를 누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