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화역의 플랫폼을 벗어나자마자 8월의 열기가 젖은 담요처럼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습도 78퍼센트. 피부에 닿는 공기는 끈적였고,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티셔츠는 이미 등에 달라붙어 불쾌한 감촉을 만들어냈다. "이 길이 맞다니까!" 지도를 보겠다며 앞장섰던 친구의 호기로운 외침과는 달리, 우리는 어느새 낯선 골목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고, 누군가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뒤처졌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조차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에 우리는 그냥 걷기로 했다.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오토바이 소리가 우리가 정말 낯선 곳에 도착했음을 실감 나게 했다. 정해진 목적지를 잃어버린 순간,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우연히 스며든 골목의 달콤한 위로
길을 잘못 든 덕분에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한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빛바랜 간판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고, 코끝에는 비 오기 직전의 비릿한 흙 내음과 눅눅한 먼지 향이 스쳤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나기를 피해 서둘러 들어간 '창화 파파야 우유 대왕' 집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돌렸다. 차가운 플라스틱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고, 한 모금 들이킨 파파야 우유의 묵직한 달콤함이 머리끝까지 짜릿한 냉기를 전달했다. 이어 들른 '부이팡'에서 갓 구운 단황수를 샀을 때, 상자를 열자마자 퍼진 은은한 밀가루 향과 고소한 냄새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바삭한 껍질을 깨물자 안쪽의 노란 달걀노른자가 온기를 머금은 채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젖은 운동화가 발가락 사이로 눅눅하게 느껴졌지만, 입안에 남은 달콤함 덕분에 우리는 다시 걷어낼 용기를 얻었다.
우리만의 은신처, 푸구이 민수에서의 밤
마침내 도착한 푸구이 민수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구원과도 같은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었다. 밖의 끈적임이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며 피부가 보송하게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를 차지하기 위한 가벼운 전쟁을 치렀다. "여긴 내 자리야!" 소리를 지르며 더블베드 위로 몸을 던진 친구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일본식 요가 깔린 방과 소파베드까지, 각자의 영역이 정해지자 비로소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찾아왔다.
거실 한편에 놓인 전동 마작 테이블은 이 집의 백미였다. 짐을 풀자마자 시작된 마작 패의 찰칵거리는 마찰음이 리드미컬하게 거실을 채웠고, 그 소리는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노래방 마이크를 켜고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넷플릭스 화면 속 화려한 영상들을 배경 삼아 우리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체크인 전부터 세심하게 배려해 준 주인장의 다정함은 공간 곳곳에 묻어나는 작은 소품들과 청결한 시트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갓 세탁한 비누 냄새가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창밖의 빗소리가 아득한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원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밤이었다.
창밖의 빗소리가 잦아들 무렵, 우리는 다시 한번 마작 패를 섞었다.
- 푸구이 민수 근처 '야마자키 식당'의 정갈한 일본 가정식을 추천한다.
- 정성 야시장은 도보 10분 거리이니, 젖은 옷을 말리고 천천히 걷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