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은 분명 도착이라 했지만, 눈앞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언덕뿐이었다. 차 안은 이미 누가 예약을 꼬았는지, 주차는 어디에 하는지를 두고 고성이 오가는 작은 전쟁터였다. 창문을 내리자 1월의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왔고, 눅눅한 흙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팔괘산 반산허리에 자리 잡은 화수 컬처 호텔 입구에서 무심한 표정의 보안 요원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엉망진창인 시작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이 호텔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네 가지
1. 눕는 것의 숭고함: 럭셔리 더블룸의 문을 열자마자 우리가 한 일은 단 하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적당한 탄성으로 몸을 감싸는 매트리스의 촉감과 빳빳하게 잘 마른 시트의 감촉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눕는 법'을 잊고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2. 비대면이 주는 다정한 해방감: 라인으로 전송된 비밀번호를 누를 때 들리는 경쾌한 '띠릭' 소리는 내향인인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낯선 이와 어색한 인사를 나눌 필요 없이 곧바로 내 공간에 침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쾌적했다. 효율성을 넘어선, 일종의 배려 섞인 고독이었다.
3. 주차라는 이름의 확률 게임: 주차 공간이 한정적이라는 안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외출 후 돌아올 때마다 내 자리가 무사한지 의심하며 가슴을 졸여야 했지만, 우리는 매번 진입 전 '이번에도 성공할까'라는 쓸데없는 내기를 했다. 그 묘한 긴장감이 오히려 여행의 활력이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4. 흰색 시멘트의 온도: 차가운 산업풍 인테리어와 화이트 시멘트 벽면은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슬리퍼로 갈아신고, 복도에 놓인 무료 커피의 구수한 향을 맡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후의 햇살이 큰 창을 통해 들어와 벽에 부딪힐 때, 공간은 몽글몽글한 우윳빛으로 변하며 머릿속 소음까지 지워주었다.
리스트 밖에서 만난 월영의 밤
계획에는 없었다. 그저 근처에 등불 축제가 열린다는 말에 무작정 팔괘산 대불 풍경구로 향했다. 1월의 밤공기는 살을 에듯 매서웠지만, 어둠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화려한 빛들은 마치 밤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몽환적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말 인형 앞에서 서로의 못생긴 표정을 찍어주며 낄낄거리던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걷다 보니 허기가 졌다. 근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원을 샀다. 끈적하고 달콤한 소스가 묻은 쫄깃한 육원을 한 입 베어 물자, 차갑게 식었던 몸속으로 뜨거운 온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뒤이어 마신 시원한 파파야 우유의 달콤함이 입안을 정돈해 주었다. 화수 컬처 호텔로 돌아오는 길, 로비의 둥근 아치형 천장과 통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은은한 조명을 보며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적당히 걷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누워 있는 것이 여행의 전부여도 충분하다고.
하얀 침대 시트 위에 흩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보며 우리는 그냥 웃었다.
- 팔괘산 대불 풍경구의 등불 축제는 밤 10시 전에 방문해야 여유롭게 걷기 좋습니다.
- 남곽로 맛집 거리까지는 차로 10분 거리이니, 야식을 넉넉히 포장해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