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희뿌연 안개가 거대한 커튼처럼 도시를 덮고 있었다. 2월의 창화는 생각보다 서늘했고, 공기 중에는 눅눅한 흙 내음과 차가운 습기가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칭얼거렸고, 거실은 금세 작은 전쟁터가 되었다. 둘째는 양말 한 짝을 어디에 뒀느냐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첫째는 어제 본 기차의 궤도 이야기를 하느라 입술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지우하오 행관의 아침은 그렇게 소란스럽게 시작되었다. 조식으로 나온 따뜻한 음식들을 입에 밀어 넣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여행이란 결국 짐을 싸고, 잃어버린 양말을 찾고, 다시 짐을 푸는 지루한 반복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소란함 끝에 마신 파파야 우유 한 잔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60년 전통이라는 가게의 맛은 정직했다. 혀끝에 닿는 부드러운 질감 뒤로, 너무 달지 않은 담백함과 끝맛에 살짝 감도는 쌉싸름한 파파야 본연의 향이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웠다. 우유 수염을 만든 채 서로를 보며 낄낄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안개 낀 아침의 정적을 기분 좋게 깨뜨리고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보러 가기 전, 이 작은 소동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시작처럼 느껴졌다.
14:00, 제8플랫폼에서 맞이한 정적
선형 차고지에서 끝없이 이어진 기차들의 행렬을 구경하고 돌아온 오후였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이미 바닥이 났고, 나의 인내심 역시 붉은색 경고등이 켜진 상태였다. 호텔 방으로 들어서자 지우하오 행관만의 독특한 '제8플랫폼' 테마가 우리를 맞이했다. 실제 기차역은 아니었지만, 정교하게 꾸며진 공간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비밀스러운 정거장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아이들의 작은 몸을 포근하게 집어삼켰고, 곧이어 규칙적이고 느릿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과 창틈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겨울 공기가 묘하게 섞여 쾌적한 온도를 만들어냈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행지에서 누워있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을 받은 기분. 낮게 깔린 조명 아래, 잠결에 내 옷자락을 꼭 잡은 둘째의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거창한 계획 같은 건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그저 이렇게 다 같이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었다.
19:00, 달콤한 소스와 황금빛 등불의 밤
저녁으로는 창화의 명물인 육원을 먹었다. 쫀득한 피 속에 아삭한 죽순과 고소한 고기가 꽉 차 있었고, 그 위에 듬뿍 얹어진 끈적하고 달콤한 찹쌀 소스가 입안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첫째는 소스가 너무 달다며 투덜거렸지만, 정작 젓가락은 멈출 줄 몰랐다.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오물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사람은 가장 정직해진다고.
배를 채운 뒤 향한 곳은 팔괘산의 월영등축제 현장이었다. 밤공기는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거리마다 걸린 수많은 등불이 주변을 따뜻한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등불을 보며 눈을 빛냈다. 평소라면 '조심해라', '뛰지 마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겠지만, 그날만큼은 그냥 두기로 했다. 등불 사이를 나비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의 얼굴 위로 황금빛 조명이 내려앉았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외투 깃을 세워주고 손을 꼭 맞잡은 그 작은 손길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고 충만한 밤이었다.
22:00, 오직 어른들만 남은 시간
아이들이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든 밤, 방 안에는 다시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아내와 나는 나란히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며 하루를 정리했다. 온종일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 몸과 마음이 소진된 기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포근한 침구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촉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하루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는 낮에 본 기차들의 웅장함에 대해,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늦게 일어나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자는 소박한 계획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삶은 굳이 특별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렇게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행이란 결국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내가 얼마나 평범한 행복에 취약하고 또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창화의 밤풍경이 희미한 불빛으로 일렁였다. 내일은 또 어떤 소란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우리를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이 포근한 침대와 내일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늘 이런 별거 아닌 순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포근하게 메우고 있었다.
- 팔괘산 월영등축제는 밤바람이 차가우니 아이들을 위해 가벼운 겉옷을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 지우하오 행관의 제8플랫폼 테마 룸은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치기에 최적의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