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방이라며, 근데 왜 수건이 없어?"
"야, 여기 그리스 방이라며! 근데 왜 수건이 없어?" 민석이 젖은 머리를 털며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게 바로 청년 호스텔의 낭만이라는 거야.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심, 알지?" 내 대답에 옆에서 지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낭만 같은 소리 하네. 내 머리가 지금 낭만적으로 젖어있는데! 너 아까 수건 챙기라고 했지?" "했지, 근데 네가 안 챙겼잖아!" 우리는 서로의 건망증을 두고 5분 동안 치열하게 논쟁했다. 결국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은 채,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퍽퍽한 종이 타월로 머리를 닦기로 합의했다. 거친 감촉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우리는 그 상황이 웃겨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번진 잉크 자국 같은 공간의 기록
우리의 여행은 누군가 대충 휘갈겨 쓴 손때 묻은 쪽지 같았다. 정교한 계획표 대신 '일단 가보자'는 무책임한 합의만 가득했다. 우리가 묵은 소울맵 호스텔은 창화 시내의 평범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로 들어서면, 정제된 호텔 향기 대신 누군가의 세탁 세제 냄새와 눅눅한 오래된 나무 향이 섞여 났다. 우리가 묵은 그리스 방은 밝은 채광이 돋보였고, 복도 끝 공용 주방에서는 다른 여행자들이 나누는 소란스러운 식사 준비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가 들려왔다. 시트의 촉감은 빳빳하지 않았지만, 몸을 뉘었을 때 적당히 고요해지는 포근함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1월의 창화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17도 정도의 서늘함.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히 서늘한 온도였다. 공기는 건조해서 피부에 닿는 느낌이 매끄러웠다.
낮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부채꼴 차고로 가는 길은 단조로웠다. 회색빛 도로와 낮은 건물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낡은 간판들. 우리는 그 무용한 풍경들을 관찰하며 걸었다. 배가 고파 찾아 들어간 식당에서 육원을 주문했다. 끈적하고 달콤한 찹쌀 소스가 듬뿍 얹어진 육원은 입안에서 눅진하게 퍼졌고,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죽순의 식감과 알싸한 흰 후추 향이 조화로웠다. 뒤이어 마신 파파야 우유는 신선했다. 과한 단맛 대신 파파야 특유의 은은한 쌉싸름함이 끝에 남았다. 그 맛이 혀끝에 꽤 정확하게 기억난다.
오후에는 팔괘산 대불 풍경구로 향했다. 월영등제가 한창이었다. 밤하늘 아래 펼쳐진 화려한 등불들은 어둠 속에서 선명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로디 점핑 서커스' 테마의 등불들은 유치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우리는 하늘 보도를 천천히 걸으며, 등불의 색깔이 바뀌는 순간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번진 잉크 자국처럼 모호한 일정 속에서, 우리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냥 걸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겨울꽃 하나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그 종이의 거친 질감 같은 투박함이 오히려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소울맵 호스텔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정해진 틀 없이 흘러갔다.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밤의 대화
"내년에도 여기 올까?" 불이 꺼진 방, 천장을 바라보며 지훈이 낮게 물었다. "글쎄, 그때도 수건 안 챙겨오면 절대 안 와." 민석이 툭 내뱉었지만, 목소리에는 가시가 없었다. "사실 나쁘지 않았어, 여기." 내가 덧붙였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낮 동안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자리에는 적당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것 같아." 지훈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작게 웃었다. 눅눅한 침구 속에 발을 밀어 넣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누는 이 무용한 대화들이 충분했다.
창밖으로 창화의 정적한 밤공기가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 창화 시내의 로컬 맛집을 찾으신다면 육원과 파파야 우유의 조합을 추천합니다.
- 소울맵 호스텔 투숙 시, 개인 세면도구와 수건을 챙기면 더욱 쾌적한 여행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