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복도를 달린다. 1층부터 5층까지 층층이 놓인 초록색 식물들이 아이의 작은 어깨를 스치며 싱그러운 잎사귀 소리를 낸다. 나뭇잎 하나가 아이의 머리카락에 살포시 내려앉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떼어내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3월의 공기는 적당히 미지근하고, 복도에는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 대신 눅눅하면서도 은은한 흙 내음과 풀 향기가 머문다.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아이의 가벼운 발소리가 정적이었던 공간에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불어넣는다.
침대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티미오스 인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복도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그 미묘한 온도 차이가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삶의 60% 정도의 힘만 쓰며 천천히 걷는 것. 빳빳하게 잘 다려진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딱 그만큼의 적당한 안락함을 제공한다. 일본식 미니멀리즘이 반영된 정갈한 방 안에서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완전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공용 공간에서 물을 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쫄쫄쫄,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리듬. 일회용 생수병 대신 직접 물병을 들고 오는 작은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그 소리는 정적을 깨뜨리기보다 공간의 밀도를 차분하게 채운다. 누군가 낮게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낯선 여행자들의 낮은 대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시간. 투명한 물병에 맑은 물이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는 이 이름 모를 이들과 공유하는 느슨한 연대감을 느낀다.
아침 8시,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죽과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가 놓여 있다. 갓 구운 빵의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근처에서 사 온 부얼팡의 달걀 노른자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붉은 팥소의 진한 단맛과 노른자의 퍽퍽함이 입안에서 묘하게 어우러진다. 아이는 죽에 설탕을 듬뿍 섞어 달콤한 맛을 즐긴다. 오물거리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보며, 나는 이 순간의 맛과 향기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임을 직감한다.
오후 4시의 햇살이 로비 깊숙한 곳까지 길게 드리워진다. 빛은 바닥 위에 선명한 황금빛 사각형을 그려놓았다. 나는 그 그림자 속에 발을 살며시 집어넣고 가만히 서 있었다. 3월의 빛은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로 피부에 닿는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며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관찰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져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욕실에 놓인 대용량 세정제 통을 가만히 바라본다. 작은 플라스틱 병들이 무질서하게 줄지어 서 있지 않은 풍경. 펌프를 가볍게 누르자 몽글몽글하고 하얀 거품이 솟아오른다. 손가락 사이로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거품의 촉감이 기분 좋게 부드럽다. 불필요한 포장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단순함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은은한 비누 향이 코끝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찰나, 비움이 주는 충만함을 경험한다.
팔괘산의 화려한 등불 물결을 보고 돌아온 깊은 밤. 아이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방 안에는 규칙적이고 낮은 숨소리만 남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거창한 대화는 없었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 담긴 안도감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티미오스 인의 고요한 품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꽉 찬다. 소란함이 걷힌 자리에 남은 포근한 정적이 우리를 감싼다.
눅눅한 공기 속에 섞인 풀 냄새가 참 좋았다.
- 팔괘산 대불 풍경구에서 로디 말 등불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와 달콤한 낮잠을 즐겨보세요.
- 아침 식사 후 호텔 곳곳의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아이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