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지 않겠다”는 호기로운 내기는 시작한 지 30분 만에 깨졌다. 내비게이션의 배신으로 Tai Bei Fu Xin Da Fan Dian 로비에 들어섰을 때, 우리 셋의 표정은 이미 영혼이 가출한 상태였다. 하지만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탁 트인 로비의 개방감이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우리 같은 길치들이 숨어들기 딱 좋은 안식처 같았다.
조식 뷔페의 볶음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어 씹을 때마다 고소한 풍미가 터졌다. 짭조름한 돼지고기의 진한 향이 콧등을 간지럽혔고, 접시 위에 산처럼 쌓인 음식들을 보며 우리는 서로의 식탐을 가감 없이 비웃었다.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정직한 맛, 그 단순한 만족감이 아침의 공기를 채웠다.
캐리어를 풀자마자 시작된 유치한 설전. “호텔에 드라이기가 있는데 이걸 왜 챙겨왔어?”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드라이기가 풍량이 훨씬 세다며 당당하게 턱을 치켜세웠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사이로 오가는 쓸데없는 고집. 우리는 그 무의미한 논쟁을 한참이나 구경하며 낄낄거렸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용도 없는 다툼에 있다.
객실 문을 연 순간, 운동장만큼 넓은 침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누가 더 오래 누워있나 내기를 하며 천장의 무늬를 하나하나 세다 보면 어느새 의식이 몽롱해졌다. 푹신한 매트리스 속으로 몸이 깊게 잠길 때,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게으름을 허락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3월의 신베이는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흙 내음이 바람에 섞여 있었다. 기온은 19도, 가디건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행위가 무한 반복됐다. 갈팡질팡하는 계절의 온도감이 꼭 우리들의 서툰 여행 모습과 닮아 있어 묘하게 웃음이 났다.
우아한 분위기의 스위트룸 내에 놓인 묵직한 나무 책상이 마음에 들었다. 손끝에 닿는 서늘한 나무의 촉감과 무선 인터넷의 빠른 속도 덕분에 밀린 메일함을 정리하는 시간이 쾌적했다. 주변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느끼는 적당한 고립감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벚꽃을 찾아 나선 길에서 예고 없는 비를 만났다. 편의점에서 급히 산 투명 우산 세 개가 나란히 늘어섰고, 플라스틱 위로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젖은 신발이 무거워질수록 오히려 땅을 더 단단하게 딛고 걷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창밖으로 228 연휴의 인파가 개미 떼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우리는 Tai Bei Fu Xin Da Fan Dian의 하얀 침구 속에 엉켜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가장 완벽한 설계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흰 시트 위에 부서져 내린 오후의 햇살 조각.
- 조식의 볶음밥이랑 짭조름한 돼지고기는 무조건이야. 밥알 식감이 예술이거든.
- 방이 정말 넓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걸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