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타이중 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 피부에 닿는 공기는 갓 꺼낸 냉장고 속 물병처럼 서늘하고 청량했다. "정말 온 거야?" 서로에게 던진 질문은 대답 대신 찢어지는 기차표 소리에 묻혔고, 우리는 그 낯선 해방감에 몸을 맡긴 채 Bao Dao 53 Xing Guan으로 향했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리모델링된 공간 특유의 깨끗하고 빳빳한 세제 향과 은은한 커피 향이 섞여 코끝을 스쳤다. 밝은 빛이 가득 쏟아지는 객실 안, 특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은 침대는 마치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하얀 섬 같았다. 그 위에 나란히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다 보면, 문에 달린 추가 잠금장치를 돌릴 때 나는 둔탁한 금속성 소리가 정적을 기분 좋게 갈랐다. "여기 정말 넓다," 네가 나지막이 읊조린 말은 공기 중에 부드럽게 흩어졌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비로소 일상에서 멀어졌음을 실감했다. 밖으로 나가 맛본 아이스크림의 시린 차가움이 혀끝을 자극했고, 제2시장에서 마주한 복주식 의면의 쫄깃한 면발과 짭조름한 고기 고명은 입안에서 소박하지만 확실한 축제를 벌였다.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기에 오히려 우리는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다정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추홍곡 생태공원의 땅 밑으로 꺼진 초록색 정원에 들어서자 도시의 소음은 아득한 배경음으로 밀려나고, 발밑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흙내음과 바람에 서걱거리는 풀잎 소리만이 선명해졌다. 너는 내 소매 끝을 아주 살짝, 하지만 분명하게 쥐었고 나는 그 작은 온기가 내 심장까지 천천히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우리의 보폭은 어느덧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해져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들른 작은 헬스장에서의 정적과 로비 카페의 나른한 조명은 여행의 피로를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다시 돌아온 방, 하얀 시트가 피부에 닿는 매끄러운 촉감과 복도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낮은 말소리가 오히려 우리의 고요를 완성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냥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상태. 짐을 넉넉히 챙겨왔지만 정작 쓴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았고, 남은 짐들이 만드는 가방 속의 빈틈은 오히려 쾌적한 여백처럼 느껴졌다.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밤, 우리는 그렇게 Bao Dao 53 Xing Guan의 포근함 속에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안온함을 누렸다. 다시 눈을 감으니 침대의 부드러움이 온몸을 감쌌고,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이 꼭 특별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이토록 다정한 풍경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 미하라 안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9월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호텔까지 천천히 걸어보세요.
- 제2시장의 복주식 의면과 콩고기 덮밥을 맛보며 타이중 사람들의 느긋한 일상을 관찰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