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드링크의 금귤 향: 혀끝을 찌르는 상큼함과 잔 표면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이 손등을 타고 흐르던 감각.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누가 가장 먼저 길을 잃을지 유치한 내기를 하던 찰나를 기억한다. 결국 모두가 미아가 되었지만, 입안에 남은 쌉싸름한 여운만큼은 꽤 정확한 예언이었다.
네온사인의 핑크빛 문구: "A Little Party Never Killed Nobody". 전구의 지직거리는 소음과 얼굴을 마젠타색으로 물들이던 강렬한 조명. 힙한 분위기에 취해 사진을 찍으려다 중심을 잃고 엉거주춤하게 뒤로 넘어지던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묵묵히 지켜봤다. 층고 높은 로비에 파편처럼 흩어지던 우리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당구대의 거친 초록색 천: 손끝에 닿는 까슬까슬한 질감과 공들이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타격음. 승부욕에 눈이 멀어 말도 안 되는 억지 룰을 만들어내던 우리의 치졸함을 모두 보았다. 큐대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그 팽팽한 긴장감. 사실 별거 아닌 게임이었지만,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명예를 건 것처럼 굴었다.
단단하게 몸을 받쳐주는 매트리스: 척추를 곧게 펴주는 적당한 탄성과 살결에 닿는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감촉. 밖에서 온종일 걷느라 너덜너덜해진 우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침대로 다이빙하며 쓰러진 순간을 기억한다. 눅눅한 5월의 공기가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에 씻겨 내려가던 그 쾌적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심했다.
도시의 실루엣이 비치는 통유리창: 새벽 두 시의 서늘한 유리 촉감과 멀리서 깜빡이는 도시의 무심한 불빛들. 잠이 오지 않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우리가 나눈 실없는 대화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우리 내일은 진짜 길 안 잃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까지도 모두 담아냈다.
만약 이 공간의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이 방의 가구들은 우리를 '작은 폭풍'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들어올 때부터 이미 예견된 소란이었다. 우리는 정중한 환대나 정제된 서비스보다는, 체크인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들이켜며 서로의 멍청한 실수를 가감 없이 흉볼 수 있는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Moxy Taichung의 내부는 차가운 금속 소재와 화려한 네온으로 무장해, 밖의 눅눅한 습기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5월의 타이중은 비가 오기 직전의 무거운 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이곳의 현대적인 감각은 우리를 다시금 들뜨게 했다. 우리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계획이 보기 좋게 틀어지는 과정을 즐겼다. 길을 잘못 들어 도착한 이름 모를 골목에서 진한 백합꽃 향기를 맡고,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서로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완벽한 여행은 지루하다. 대신 우리는 적당히 엉망진창인 순간들을 수집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은 또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고민하던 그 무용한 시간들이 모여, 이번 여행의 진짜 색깔이 되었다. 돌아보면 별거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괜찮았다.
로비의 보라색 조명이 등 뒤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 루프탑 XOXO 바에서 타이중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볼 것.
- 펑러공원역에서 내려 3분만 걸어 들어오는 그 짧은 산책을 즐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