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시작은 누가 먼저 짐을 잃어버릴까 하는 유치한 내기였다. 결과는 허무한 무승부였지만, 대신 한 친구가 호텔 슬리퍼를 챙기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그 사소한 빈틈을 두고 한 시간 내내 배를 잡고 웃었다. 타이중시 타이핑구로 향하는 길은 뱀처럼 굽이쳤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초록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졌다. 눅눅한 풀 내음이 에어컨 바람 사이로 섞여 들어오던 오후였다.
시장에서 산 망고는 묵직하고 노란 빛깔이 탐스러웠다. 껍질을 가르자 끈적하고 달콤한 황금빛 과즙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다. 냅킨을 찾는 대신 서로의 엉망이 된 손을 보며 낄낄거렸다. 피부에 닿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입안을 가득 채운 뜨겁고 진한 달콤함. 그 이질적인 온도 차가 묘하게 기분 좋은 조화를 이뤘다.
"내 계획은 완벽해." 호기롭게 외치던 친구가 지도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 우리는 낯선 주택가 한복판에서 20분 동안 미아가 되어 서 있었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잠시 풍경을 감상하는 중이야." 뻔뻔한 변명에 결국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Wei Xiao De Jia ( Min Su )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그저 웃기로 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여행 계획표의 긴장이 기분 좋게 느슨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더 오래 침대에 붙어있나 내기를 했다. Wei Xiao De Jia ( Min Su )의 침대는 생각보다 깊고 포근했다. 몸이 천천히 고요해지으며 중력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 시간 동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낮은 천장의 무늬를 하나하나 세었고, 가끔씩 잠긴 목소리로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느슨해진 관계의 끈이 주는 안락함이 온몸을 감쌌다.
오후 3시, 갑자기 하늘이 무거운 회색빛으로 내려앉았다. 곧이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규칙적인 타악기 소리처럼 들려왔다. 창문을 열자 젖은 흙 내음과 비릿한 풀 향기가 훅 끼쳐 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멈추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6월의 소나기는 짧았지만 강렬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빌라의 벽면은 눈이 시릴 정도로 깨끗한 흰색이었다. 창밖으로는 타이중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지만, 시내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완벽한 고요를 만들어냈다. 도시의 소음은 소거되고,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희미한 반짝임만 남았다. 고립되었다는 느낌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호스트가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을 때, 비로소 이 집의 이름이 왜 '미소'인지 깨달았다. 정원에 놓인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빗물이 천천히 마르는 과정을 지켜봤다. 신발 끝이 조금 젖어 축축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을 모두 달성한 기분이었다.
졸업 후의 막막함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을지, 내일은 어디서 멍을 때릴지만을 치열하게 논의했다. 아무런 쓸모 없는 대화들이 솜사탕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녔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그 평범함이 우리를 가장 깊게 위로했다.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면, 그때도 우리는 여전히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다.
창가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이 느릿하게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 타이핑구의 고요한 주택가를 정처 없이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 체크아웃 전, 정원에 앉아 도시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