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우리에게. 기억나? 11월의 타이중, 누가 먼저 길을 잃을지 내기하며 헤매던 그 서툴렀던 시간들.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아무도 화내지 않고 그저 웃음 터뜨리던 우리의 무해한 모습이 문득 그리워질 것 같아.
5년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선명히 박혀있을 찰나의 조각들
Wei Xiao De Jia ( Min Su ) 거실 창가에서 내려다본 밤의 파노라마. 리노베이션된 깨끗한 공간, 보드라운 소파에 몸을 묻고 바라본 타이중 시내의 불빛들은 마치 누군가 밤하늘에 쏟아버린 은하수처럼 촘촘했다. 창틈으로 스며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의 그 짜릿함과 호박색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는 도심의 소음이 아스라이 들려오던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했고 그 정적은 그 어떤 대화보다 밀도 높게 우리를 연결했다.
추홍곡의 붉은 잎사귀와 눅눅한 흙내음. 타오르는 듯한 진홍빛 잎사귀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 11월의 숲속에서 우리는 엉뚱한 각도로 서로를 찍어주며 낄낄거렸다. 발끝에 닿던 푹신하고 축축한 흙의 감촉과 코끝을 스치던 알싸한 나무 향기가 우리를 낯선 도시의 품속으로 깊이 끌어당겼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는 마치 우리가 걷는 모든 걸음을 축복하는 다정한 박수 소리처럼 들려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입안을 가득 채우던 복주면의 쫄깃한 온기. 아기 삼대 복주면 집의 소란스러운 소음과 뜨거운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맛본 면발은 끈적할 정도로 찰졌고, 짭조름한 고기 고명은 혀끝에 진하게 남았다.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속에 "진짜 맛있다!"라고 외치며 서로의 입가에 묻은 양념을 보고 터뜨린 웃음소리가 식당의 뽀얀 증기와 섞여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던 그 충만한 순간이 기억난다.
타이핑구 주택가의 나른한 정적. 아침 7시, 창문을 열면 쏟아져 들어오던 투명한 햇살과 멀리서 들려오던 오토바이 엔진 소리, 그리고 이웃집의 낮은 속삭임들이 마치 다정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낯선 동네의 공기가 주는 묘한 소속감 속에서 "여기선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아"라고 나직이 읊조렸던 그 안도감은, 치열한 일상을 살아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서적 도피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5년 후, 이 기록의 봉인을 해제했을 때
아마 우리가 나눈 구체적인 대화들은 희미해졌겠지만, Wei Xiao De Jia ( Min Su )의 넓은 침대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바라보던 그 나른한 해방감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시내까지 30분을 달려야 한다는 투덜거림조차 사실은 그 거리만큼의 고요를 탐닉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11월의 타이중이 건네준 적당한 온도의 바람과 함께, 우리가 나누었던 무조건적인 신뢰와 안도감이 다시금 피부 끝으로 전해질 것이다.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마시던 미지근한 캔커피의 온기.
- 타이중 시내와 거리가 있는 타이핑구의 정적을 즐기려면 렌터카나 택시 이용을 추천한다.
- 추홍곡 공원은 해 질 녘에 방문해 붉은 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찰나를 만끽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