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겨울 햇살이 바닥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조각을 그려 넣을 때였다. Taichung One Hotel의 외관은 마치 도시의 표정을 그대로 비추는 거대한 유리 거울 같았다. 12월의 타이중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갛게 씻겨 있었고, 그 투명한 푸른색이 건물의 유리 커튼월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체크인을 위해 들어선 로비는 압도적인 층고를 자랑했다. 천장이 높으면 소리는 위로 흩어지기 마련이다. 덕분에 붐비는 시간임에도 주변의 소음은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아스라이 들려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지만, 그 정적이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공간이 주는 광활한 개방감이 우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부드럽게 흡수해 준 기분이었다. '여기 정말 넓다,' 누군가 나직이 뱉은 말 한마디가 높은 천장을 타고 가볍게 공명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서자 12월의 건조하고 쾌적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바람은 차갑기보다 기분 좋게 서늘했고, 코끝을 스치는 공기에서는 겨울 특유의 정갈한 냄새가 났다. 우리는 근처의 타이중 국가 가극원으로 향했다. 건축물의 기묘한 곡선들이 마치 얼어붙은 파도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계획 없이 걷는 길이었지만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가끔 보폭이 맞지 않아 한 사람이 멈춰 서면, 다른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며 곁을 맞췄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걷다 발견한 작은 가게에서 산 따뜻한 차 한 잔이 손바닥을 통해 뭉근한 온기를 전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증기가 겨울 햇살에 반사되어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우리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같은 속도로 이 공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화려했지만, 우리는 그 빛남보다 발밑에 깔린 보도블록의 거친 질감과 뺨을 스치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에 더 깊이 집중했다.
밤 11시, 비뚤어진 화면이 주는 다정한 위로
밤 11시, 창밖의 소음이 잦아들고 도시의 불빛들이 유리창에 작은 보석처럼 맺힐 때였다. 방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 위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빳빳하게 잘 말려진 침구의 촉감은 바스락거렸고, 몸을 감싸는 적당한 무게감이 하루의 피로를 차분히 눌러주었다. Taichung One Hotel의 객실 한 켠에는 몸을 깊숙이 파묻을 수 있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몸을 맡겼고, 상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리적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적당한 틈이 우리 사이에 존재했다.
이곳의 텔레비전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지원했고, 무엇보다 화면을 벽면으로 투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우리는 영화 한 편을 골라 하얀 벽 위에 띄웠다. 그런데 투사된 화면의 각도가 약간 비뚤어져 있었다. 왼쪽 끝이 살짝 올라간, 어딘가 어설픈 모양새였다.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대신, 그 비뚤어진 각도 그대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냥 이렇게 보자, 이게 더 정겹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주는 묘한 편안함이 방 안을 채웠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화려한 대사보다, 고요한 방 안을 채우는 서로의 고른 숨소리가 훨씬 더 가깝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중간에 잠시 잠에서 깼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타이중의 야경이 보였다. 밖은 여전히 시린 겨울이었지만, 방 안은 포근한 온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다시 누워 서로의 손등을 가볍게 맞댔다. 체온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전달되는 그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무언가 거창한 약속을 하거나 다짐하지 않아도 좋았다. 지금 이 온도, 은은한 조명,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했다. 여행의 의미를 억지로 찾으려 했다면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누워 있었고, 비뚤어진 화면의 영화를 보았으며, 가끔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높은 층고의 레스토랑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맛본 조식의 단순한 풍미까지 기억에 남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장소만 옮겨졌을 뿐인데, 그 평범함이 이토록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뚤어진 영화 화면의 각도만큼, 우리의 마음도 기분 좋게 기울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