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틈새로 스며든 창백한 햇살이 발끝에 닿았을 때, 나는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적당히 미지근했고, 방 안에는 갓 세탁한 시트의 포근한 비누 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타이중의 3월은 그렇게 사람을 속절없이 나른하게 만든다. 우리는 야심 차게 계획표를 짰지만, 사실 그 종이는 호텔 방에 들어온 지 10분 만에 컵받침으로 전락했다. '그냥 다 잊고 쉬어버릴까?' 누군가의 나지막한 제안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완벽한 무계획의 상태로 시작되었다.
나른한 타이중에서 마주친 뜻밖의 조각들
누가 먼저 일어나는가에 대한 유치한 내기. 가로 세로 180에 20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침대는 너무나 포근해서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마치 죄악처럼 느껴졌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오기로 내기를 했지만, 바스락거리는 흰 시트의 감촉에 취해 우리 셋 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5분만 더"라고 중얼거리며 서로를 끌어당기던 그 게으른 아침의 소란함이 오히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15층 창문 너머로 펼쳐진 타이중의 속도. 운 좋게 배정받은 15층 객실의 큰 창문은 마치 거대한 액자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중 시내의 풍경은 적당히 소란스럽고 또 적당히 느긋했으며,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느릿하게 춤추는 모습이 보였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창틀에 기대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갈 곳을 잃고 겉돌았지만, 그 헛도는 느낌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무언가를 꼭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평온함만이 남았다.
하루의 끝을 씻어내는 욕조의 온기. 타이중 식물원과 시내 곳곳을 걷느라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있었다. 방에 돌아와 단독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자, 뽀얀 수증기가 욕실 거울을 하얗게 덮으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속으로 몸을 깊숙이 밀어 넣었을 때, 피부를 감싸는 뜨거운 온기가 하루의 피로를 뭉툭하게 깎아내 주었다. 화려한 스파는 아니었지만, 오직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마음속 찌꺼기까지 깨끗하게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커피 농도를 두고 벌인 진지한 논쟁. 조식 뷔페에서 마신 커피는 예상보다 훨씬 진하고 쌉쌀했다. 한 친구는 "이것이 진정한 커피의 정수"라고 주장했고, 다른 친구는 "이건 거의 에스프레소 원액 수준"이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 커피 한 잔의 비율을 두고 10분 동안이나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사실 맛보다도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곁들여 나온 신선한 열대 과일의 단맛이 쌉쌀한 커피 향과 묘하게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성한 맛을 남겼다.
40제곱미터의 공간이 주는 뜻밖의 해방감. Yong Feng Zhan Jiu Dian의 객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어 짐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아도 발 디딜 틈이 충분했다. 우리는 방 한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배달 음식을 펼쳐놓고 낄낄거리며 밤을 지새웠다. 누군가의 깊은 코골이 소리가 넓은 공간을 타고 울려 퍼졌을 때,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다는 쾌적한 거리감, 그것이 우리 관계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주었다.
무계획의 파편들이 모여 완성된 풍경
구겨진 지도처럼 엉망이었던 우리의 일정은 결국 Yong Feng Zhan Jiu Dian의 넓은 침대와 따뜻한 욕조, 그리고 정체 모를 진한 커피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거창한 여행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면 실패했겠지만, 그냥 같이 누워 있고 같이 웃었던 시간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제 몫을 다했다.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좋았다'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격려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상태였다.
창밖의 3월 햇살이 여전히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 짐을 풀고 나서 바로 눕고 싶다면, 반드시 큰 창문이 있는 넓은 객실을 선택할 것.
- 조식 커피가 너무 진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따뜻한 물을 섞어 자신만의 비율을 찾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