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불빛이 예쁠 것 같아서"
"꼭 가야 해?" 내가 짐을 챙기다 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내 손가락 끝을 아주 살짝 건드렸다. "그냥, 불빛이 예쁠 것 같아서." 낮게 고요해지은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고, 2월의 공기는 적당히 서늘했다. 우리는 거창한 계획 없이 낡은 캐리어를 끌고 창화로 향했다. 설렘보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앞선, 그런 여행의 시작이었다.여백이 주는 다정한 거리감
청셰 행려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예상보다 훨씬 넉넉한 공간의 여백이었다. 발끝에 닿는 카펫의 푹신한 질감과 오래된 호텔 특유의 차분하고 건조한 나무 향이 마음을 고요해지혔다. 특히 넓은 화장대 앞에 나란히 섰을 때,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자 마치 구름 위에 뜬 것처럼 몸이 부드럽게 고요해졌고, 그 안락함은 우리 사이의 미세한 긴장을 천천히 녹여냈다. 넓은 방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다시 확인하게 했지만, 그 적당한 거리감은 오히려 서로를 향한 갈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밖으로 나서자 2월의 창화는 수묵화처럼 흐릿한 안개에 싸여 있었다. 팔괘산의 등불 축제로 향하는 길,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보폭을 맞췄다. 누군가 앞서가지 않고, 누군가 뒤처지지 않는 그 미묘한 균형 속에서 로디 캐릭터 등불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눅눅한 공기를 가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은은하게 퍼지는 등불의 빛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소망들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춥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서로의 코트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손등에 닿는 온기는 그 어떤 난로보다 뜨거웠고 마음을 든든하게 채웠다.
출출해질 무렵 맛본 육원의 끈적하고 달콤한 찹쌀 소스가 입술에 묻어났다. 대나무 싹의 아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고,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입가를 닦아주며 작은 웃음을 나누었다. 뒤이어 마신 파파야 우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끝맛에 살짝 감도는 쌉쌀함은 우리가 나누던 대화의 온도와 닮아 있었다.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의 위로. 다시 청셰 행려로 돌아와 바스락거리는 시트 소리를 들으며 천장의 무늬를 세던 시간, 무용한 것들이 주는 안락함 속에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깊게 새겼다. 60%의 힘만 쓰며 보내는 여행, 그 느슨한 호흡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창밖의 안개가 걷히고, 옅은 햇살이 발치에 머물렀다.
- 팔괘산 등불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서로의 손끝만 살짝 잡고 걸어봐.
- 육원을 먹고 나서 파파야 우유 한 잔을 나눠 마시는 시간을 가져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