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끝에서 창틀까지는 고작 서너 걸음, 하지만 그 짧은 거리 속에 우리가 공유하는 안온한 세계가 있었다. 4월의 오후 네 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은 푸싱 인의 하얀 시트 위에 길쭉한 금빛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주인장의 세월이 묻어난 묵직한 나무 가구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배치되어 있었고, 우리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섬으로 흩어졌다. 나는 창가 쪽 낡은 목재 의자에 몸을 기댔고, 상대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이 정적의 틈을 메우고, 공기는 적당히 눅눅하면서도 포근한 습도를 머금고 있었다. 까슬까슬한 린넨의 촉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굳이 말을 걸어 이 완벽한 평온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아도 서로의 숨소리가 어디쯤 머무는지 알 수 있는 거리. 우리는 억지로 가까워지려 애쓰지 않고도, 이 공간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다.
말 없는 다정함이 스며든 풍경
객잔에서 빌린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체인이 가늘게 떨리는 금속음이 귓가를 스쳤다. 창화의 4월은 온화했다. 섭씨 24도, 땀이 나기 직전의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혔다. 바규산으로 향하는 길, 길가에 흐드러진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밀려 우리 어깨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잠깐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속도를 줄였다. 우리는 멈춰 서서 서로의 어깨에 내려앉은 하얀 조각들을 조심스레 떼어주었다. 찰나의 순간 손끝이 닿았을 때, 심장 박동이 아주 조금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화였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빵집에서 갓 구운 단황수를 샀다. 상자를 열자마자 고소한 밀가루 향과 달콤한 냄새가 확 끼쳤다. 바삭한 껍질을 베어 물자 눅진한 팥소와 짭조름한 노른자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섞여 들었다. 입가에 묻은 가루를 보고 상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따라 웃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짓는 표정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혀끝에 남은 달콤함과 어깨에 닿았던 꽃잎의 감촉만으로 이번 여행의 목적을 이미 달성했음을 깨달았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유용한 기억이 되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고요가 머무는 평행선
푸싱 인의 정원은 주인이 직접 가꾼 정성 덕분인지, 이름 모를 풀들과 화분들이 제멋대로지만 편안한 모습으로 자라 있었다. 우리는 정원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고요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나는 가져온 책의 페이지를 넘겼고, 상대는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세계에 머무는 시간. 그것은 외로운 고독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믿기에 가능한 깊은 신뢰였다. 사락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 그리고 곁에서 느껴지는 상대의 규칙적인 호흡 소리가 하나의 완벽한 배경음악처럼 어우러졌다.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편안함이 이곳의 공기와 꼭 닮아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누웠을 때, 침대는 적당히 딱딱하면서도 포근하게 몸을 감싸 안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삶은 대단한 사건의 연속일 필요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적당한 온도의 방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누워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원의 식물들이 밤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이 내린 창화의 밤은 깊고 고요했고, 우리는 그 고요함 속에 몸을 깊숙이 맡겼다. 나쁘지 않은 밤이었다. 아니,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밤이었다.
창밖의 하얀 꽃잎 한 잎이 유리창에 가만히 달라붙어 있었다.
- 단황수는 갓 나왔을 때보다 상자를 열어 한 김 식힌 후 먹어야 더 바삭하다.
- 객잔의 무료 자전거로 바규산의 꽃길을 천천히 달리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