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창화는 공기가 적당히 무거웠다. 기온은 20도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온도가 피부에 닿았다. 우리가 머문 푸구이 민수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아늑한 나무 향과 세 개의 침실이 만드는 묘한 거리감이었다. 첫째는 더블 베드가 있는 방을 차지했고, 둘째는 복층 다락의 다다미 위에 펼쳐진 일본식 침구에 몸을 던졌다. 아이들은 이곳이 낯선 여행지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다정한 집인지 헷갈려 하는 눈치였다.
아침 식사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식탁 위에 놓인 싱그러운 과일과 갓 구운 빵, 그리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 둘째가 잠이 덜 깬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왜 여기는 바닥에서 자?" 나는 대답 대신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졌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저 이 낯선 바닥의 감촉이 아이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창밖으로는 3월의 옅은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고, 아이들이 우유를 쏟고 빵가루를 흩뿌리는 소란함 속에서도 공기는 호수처럼 평온했다. 나쁘지 않은, 아주 다정한 시작이었다.
기름진 고소함과 빛의 파편들이 남긴 기억
민숙에서 나와 10분쯤 걸었다. 정성 야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에 머물렀다. 가족 여행이란 결국 가장 느린 이의 보폭에 나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내 보폭은 어느새 아이들의 작은 발걸음에 맞춰 반 토막이 났고, 그 덕분에 평소라면 지나쳤을 길가의 작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삼육원 앞에 줄을 섰을 때, 35년이라는 세월이 응축된 튀김 솥의 진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갓 튀겨낸 육원은 겉면이 아주 바삭했고, 한 입 베어 물자 뜨거운 육즙이 혀끝에 닿으며 강렬한 풍미를 터뜨렸다. 아이의 입가에 갈색 소스가 묻어났다. 닦아주려 손을 뻗었지만, 아이는 이미 다음 조각을 입에 넣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어 방문한 바구아산의 월영등축제에서는 로디라는 이탈리아 캐릭터 말이 거대한 등불이 되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화려한 빛의 향연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등불 아래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을 때 전해지는 눅눅하고 따뜻한 온기. 걷다 보니 다리가 조금 아팠지만, 그 기분 좋은 피로감이 오히려 여행의 실감을 더해주었다.
달콤한 마침표와 소란스러운 정적
다시 푸구이 민수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거실의 소파 베드가 우리의 영토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지쳐서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고, 우리는 미리 준비된 마작탁 앞에 둘러앉았다. 마작을 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타일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짤랑거리는 청량한 소리가 좋았다. 무용한 짓에 몰두하는 시간이야말로 여행의 핵심이자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이다.
샤오미 노래방 마이크를 켜자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가 연결된 화면에서 경쾌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정체불명의 노래를 불렀다. 음정은 엉망이었고 박자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소음이 거실을 가득 채울 때 이 공간은 비로소 우리의 집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은 부이팡에서 사 온 에그타르트로 장식했다. 얇고 바삭한 외피 속에 진한 달걀노른자와 붉은 팥소가 꽉 차 있어,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이의 뺨에 노란 타르트 가루가 묻어 있었다.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 작은 가루가 오늘의 완벽한 마침표 같았다. 아이들이 잠든 후 거실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화면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았고, 내일이면 다시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보다 지금 이 순간의 정적이 무척 쾌적했다.
아이의 뺨에 묻은 노란 가루가 달빛에 반짝였다.
- 아삼육원의 바삭한 육원은 꼭 드셔보세요. 겉바속촉의 정석입니다.
- 푸구이 민수의 노래방 마이크와 마작탁을 활용해 보세요. 무용한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