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화역에서 내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걷는 길, 10월의 공기는 25도라는 완벽한 온도로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땀방울 하나 맺히지 않는 쾌적한 바람을 타고 걷던 중, 아이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빠, 집이 왜 여기 숨어 있어?" 둘째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고개를 드니,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처럼 신비로운 터키석 색깔의 조각된 나무 문이 나타났다. H1967이라는 작은 간판이 수줍게 걸린 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우리는 2024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낯선 과거의 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실 한구석에는 빛바랜 민트색 베스파 스쿠터가 정지된 시간 속에 서 있었고, 유리장 너머로는 누군가의 치열한 삶이 묻어있을 낡은 전화기와 계산기가 보물처럼 놓여 있었다. 벽면에 붙은 1976년의 신문 한 장은 이 집이 견뎌온 55년의 세월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화려한 대리석 로비보다 낡은 가구들이 내뿜는 아늑함이 아이들에게는 더 거대한 놀이터가 되었고,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잊고 있었던 유년의 평온함을 발견했다.
발걸음마다 깨어나는 오래된 집의 속삭임
이 집의 바닥은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매끄러운 테라조였다. 아이들이 맨발로 거실을 가로지를 때마다 '착착' 하며 경쾌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정적이었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첫째는 편백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무가 내는 낮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 계단이 나한테 말을 걸어!" 아이의 외침에 웃음이 터졌고, 그 소리는 집주인 아민 씨의 쾌활한 웃음소리와 섞여 집 안을 따스하게 채웠다. 좁은 골목 덕분에 도시의 소음은 마치 마법처럼 차단되었고, 오직 우리 가족의 웅성거림과 나무 계단이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 무용한 소리들의 합주를 감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소란이 고요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천장의 삼목 지붕에 부딪혀 부드럽게 굴절되어 내려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곳이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숨을 쉬는 생명체 같은 공간임을 깨달았다.
차가운 금속과 포근한 온기가 교차하는 순간
욕실에 들어선 아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옛날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독특한 세면대였다. 둘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재봉틀의 페달을 발로 꾹꾹 눌러보았다. 비록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발끝에 닿는 금속의 차갑고 단단한 촉감은 아이에게 낯설고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편백나무 창틀의 거친 결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의 시간이 지문 사이사이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침대에 몸을 던진 순간, 예상치 못한 독립매트리스의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겉모습은 낡고 투박한 구옥이지만, 몸이 닿는 곳만큼은 현대적인 쾌적함이 살아있는 이 이질적인 조합이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이들은 차가운 테라조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었고, 등으로는 10월의 따스한 햇살을, 배로는 바닥의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며 나른한 오후의 정점에 머물렀다.
쫀득한 달콤함 속에 스며든 창화의 계절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닿는 대원마서에서 기념품을 챙긴 후, 우리는 창화의 명물인 육원을 맛보기로 했다. 쫀득하고 투명한 피 속에 아삭한 죽순과 고소한 고기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위로 듬뿍 얹어진 찹쌀 소스의 달콤함이 혀끝을 자극했다. 아이들은 입가에 갈색 소스를 잔뜩 묻힌 채 서로를 보며 낄낄거렸고, 강한 단맛 뒤에 찾아오는 짭조름한 간장의 풍미는 입맛을 계속해서 돋우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이방의 단황수까지 곁들였다. 갓 구워져 나와 온기가 남아있던 빵의 껍질은 얇고 바삭하게 부서졌고, 한 입 베어 물자 진한 붉은 팥소와 짭짤한 노른자가 입안에서 황홀하게 어우러졌다. 아이들은 이 맛을 '마법의 맛'이라 정의했다. 화려한 미식은 아니었지만,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은 그 소박한 맛은 훗날 창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날 선명한 기억의 조각이 될 것 같았다.
기억의 저편을 불러오는 마른 나무의 향기
방 안에는 옅은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인위적인 방향제의 향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바람과 햇볕이 천천히 말려낸 나무 본연의 정직한 냄새였다. 창문을 열면 골목길의 젖은 흙 내음과 이웃집에서 풍겨오는 저녁 식사 준비의 구수한 냄새가 섞여 들어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10월의 창화는 습도가 적당해 이러한 냄새들이 공기 중에 무겁지 않게 떠다니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옷가지에서 나는 깨끗한 세제 냄새와 오래된 집의 나무 냄새가 섞인 것을 신기해하며, "여기선 할머니 집 냄새가 나"라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기억 속 아주 깊은 곳, 10세 이전의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했을 법한 그리운 냄새가 되살아났다. 화려한 향기는 없었지만,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냄새. 그 포근한 향기 속에 누워 있으니 비로소 우리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의 한복판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터키석 색깔의 문을 닫고 나오니, 다시 평범하고 다정한 10월의 거리였다.
- 창화역에서 도보 12분 거리이므로, 가벼운 짐으로 천천히 골목 산책을 즐기시길 권합니다.
- 숙소 근처의 대원마서와 불이방 단황수는 꼭 맛보세요. 아이들도 좋아하는 정직한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