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창화는 공기가 날카롭게 건조했다. 피부 끝을 스치는 바람은 꽤나 찼고, 팔괘산 대불 광장의 달빛 등불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엔 모두의 입술이 하얗게 터 있었다. 우리는 유치한 내기를 했다. 호텔 문을 여는 순간 누가 먼저 배고프다고 말하는지. 결국 내가 졌다. 하이델베르크 모텔의 묵직한 전동 셔터가 스르륵 올라가며 우리를 맞이했을 때, 내 머릿속은 이미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으로 가득했다. 호텔 바로 앞에 픽마트가 있다는 사실은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효율적인 행운이었다. 우리는 헐거운 슬리퍼를 대충 꿰어 신고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닐봉지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캔맥주 몇 캔과 이름 모를 현지 과자, 그리고 내일 아침의 당분을 책임질 초콜릿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달그락거렸다. 다시 돌아와 셔터가 소리 없이 닫히는 그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며, 우리는 비로소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우리만의 작은 요새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바삭한 과자 소리에 섞인 시시한 진심들
"야, 너네 진짜 안 믿겠지만 나 여기 이름 보고 독일 가는 줄 알았어. 하이델베르크라며?"
침대 위에 과자 봉지를 쏟아놓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방 안의 온기와 섞여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 '완벽하게 누워 있기'였다고 고백했다.
"참나, 입구부터 그냥 대만 모텔인데 무슨. 헛꿈 꾸지 마."
캔맥주를 따는 '칙' 하는 경쾌한 소리가 정적을 깼고, 톡 쏘는 탄산의 청량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낄낄거렸다.
"솔직히 우리 계획 다 짰는데, 결국 제대로 간 데 하나도 없잖아. 근데 이게 더 럭키비키 아냐?"
"그게 여행이지. 빡빡하게 움직이는 건 출장이고. 그나저나 이 소파 진짜 편하다. 그냥 여기서 굴러다녀도 될 것 같아."
우리는 낮에 먹었던 육원의 끈적하고 달콤한 소스 맛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쫀득한 식감이 혀끝에 감돌던 기억, 파파야 우유의 끝맛에 섞여 있던 묘한 씁쓸함 같은 것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방 안의 공기를 적당히 데워주었다. 서로의 멍청한 결정들을 칭찬하며 침대 시트에 과자 부스러기를 조금씩 흘렸다. 굳이 정리할 필요 없는 타인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가장 무방비한 모습들을 공유하며 밤을 갉아먹었다.
포만감이 남기고 간 다정한 정적
봉지가 비워지고 대화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제는 낮은 조명과 가습기가 뿜어내는 단조로운 수증기 소음만이 방을 채웠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거대한 거품 욕조로 향했다. RO 정수 시스템을 거쳤다는 물은 피부에 닿는 감촉부터 달랐다. 마치 비단 한 겹을 얇게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몸을 감싸 안았다. 욕조 옆 텔레비전에서는 채널이 꼬인 정체불명의 영상이 무성영화처럼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리모컨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물속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이델베르크 모텔의 방은 적당한 크기 덕분에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한 안락함을 주었다. 60퍼센트의 힘만 쓰기로 한 여행.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고, 그저 침대의 포근함과 물의 온도에 몸을 맡겼다. 창밖의 12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겠지만, 두꺼운 방음문 너머의 이곳은 고요한 숲속 같았다. 누군가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 그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해도 되는 시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게으른 평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어버린 맥주 캔 옆으로 새벽 세 시의 정적이 낮게 내려앉았다.
- 픽마트에서 고른 현지 과자와 시원한 캔맥주의 조합
- 창화 시내에서 포장해온 쫀득한 육원과 달콤한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