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진짜 여기 맞아? 간판부터 심상치 않은데, 우리 길 잃은 거 아니지?"
"맞겠지, 싼 맛에 오는 거잖아. 닥치고 따라와, 이 겁쟁아."
"아니, 사진 한 장 없이 리뷰만 믿고 온 거야? 너 진짜 대책 없다. 여기서 자다가 실종되면 어떡해?"
"대책 없는 건 너지! 아까 역에서 내릴 때 지도 거꾸로 들고 쩔쩔매던 건 누구였더라? 거의 나침반 수준으로 헤매던데."
"그건 방향 감각이 잠시 로그아웃된 거야! 헛소리 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해. 습해서 피부가 끈적거려 죽을 것 같으니까."
서로의 멍청함을 낄낄거리며 확인하는 소리가 눅눅한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6월의 창화는 공기 자체가 젖어 있었다. 누군가 거대한 가습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도와 낡은 시멘트 벽에서 배어 나오는 쿰쿰한 냄새가 섞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낡은 원형 창문이 머금은 시간의 조각들
우리가 짐을 푼 싼훠 호텔는 50년의 세월을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의 저장소였다. 수씨 가문의 옛집이었다는 이곳은 입구부터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벽면에 박힌 원형 창문들이었다. 마치 오래된 건물이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는 눈처럼 느껴졌고, 그 동그란 프레임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낡은 복도에 부드러운 무늬를 그려냈다. 파도 모양의 난간은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정교한 리듬감을 뽐냈는데, 우리는 그 난간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랐다. 꽉 조여 매어 발가락 끝이 저렸던 신발 끈을 천천히 푸는 기분이었다. 졸업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긴장감이 그제야 조금씩 느슨해지며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었다.
방 안은 예상외로 쾌적했다. 주인장이 욕실 공사에만 백만 원 넘게 썼다더니, 하얀 타일의 이음새 하나까지 깔끔하게 떨어져 있었다. 피부에 닿는 서늘한 타일의 촉감과 강한 수압, 그리고 적당한 온도의 물줄기가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 주었다. 낡은 외관과 대비되는 현대적인 욕실의 청결함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은 틈새 같았다.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는 적당한 탄성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잠시 후, 근처에서 사 온 단황수를 꺼냈다.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향기가 좁은 방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한 입 베어 물자 붉은 팥소의 진한 달콤함과 노란 달걀노른자의 짭조름함이 입안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식감은 눅눅한 오후의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때 창밖으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원형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동그란 궤적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장면을 우리는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낡은 방 안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4층 루프탑,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진심
"졸업하면 진짜 뭐 할 거냐? 너는 계획 세웠어?"
"글쎄. 일단 한 달은 그냥 시체처럼 누워만 있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나도. 아침에 알람 없이 눈 뜨는 게 내 올해 최대 목표야. 그게 제일 어렵겠지."
"웃기네. 너 저번 주까지만 해도 취업 준비 안 하면 인생 망한다고 난리 쳤잖아."
"그땐 그랬지. 근데 여기 오니까, 이 낡은 창문 너머 풍경을 보고 있으니까 그냥 다 별거 아닌 것 같아."
4층 루프탑에서 내려다본 창화 시내는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했다. 손에 든 파파야 우유는 얼음이 녹아 조금 묽어졌지만, 혀끝에 닿는 달콤함은 여전히 선명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서로를 헐뜯거나 비웃지 않았다. 대신 아주 가끔, 짧은 한숨을 섞어 내뱉었다. 그 한숨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평온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쉬움에 가까웠다. 6월의 밤바람이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더 이상 정답이 없는 미래에 대해 묻지 않았다. 차가운 우유 한 잔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곁에 있는 멍청하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밤이었다.
빗방울이 멎은 밤하늘 위로, 옅은 달빛이 원형 창문을 가만히 비추고 있었다.
- 창화 파파야 우유 대왕에서 현지 느낌 가득한 시원한 우유 한 잔 마시기
- 싼훠 호텔 4층 루프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도시 풍경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