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에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시야를 압도한 것은 과할 정도로 화려한 중동풍의 금빛 벽지였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신기루를 방 안에 옮겨놓은 듯, 조명 빛을 받은 벽면은 은은하게 일렁이며 낯선 이국땅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 고풍스러운 정적은 단 3초 만에 산산조각 났다. 둘째 아이가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그만 바닥에 쏟아버린 것이다. 눈부신 금색 카펫 위로 알록달록한 옥수수 과자들이 마치 무질서한 별자리처럼 흩어졌다. 웅장함을 뽐내던 테마 룸의 인테리어와 아이의 천진난만한 식탐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는 이질적인 풍경.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정교하게 설계된 화려한 공간보다, 바닥에 엎드려 과자를 줍는 아이의 작은 뒷모습이 이 방의 진짜 정체성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넓은 방 안에서 아이가 침대 끝에서 끝까지 구르는 모습은 마치 황금빛 바다를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 같았고, 그 서툰 조화로움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정적을 깨우는 뽀글거리는 호기심의 소리
방 안의 공기를 채운 것은 낮은 저음으로 웅웅거리는 에어컨 소리와 그 위를 덮는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였다. 마사지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하자, 쏴아 하는 거센 물줄기 소리가 욕실의 타일 벽을 타고 울려 퍼지며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때 첫째가 내 옷자락을 꼭 쥐고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아빠, 온천물은 어디서 오는 거야? 땅속에 아주 커다란 수도꼭지가 숨겨져 있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담긴 순수한 호기심을 외면할 수 없어, 정말로 땅속 깊은 곳에 거인만이 돌릴 수 있는 커다란 수도꼭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여 주었다. 아이는 그 답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라도 되는 양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 소리가 욕실 벽에 부딪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졌고, 그 소란함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와 섞여 하나의 교향곡이 되었다. 완전한 정적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소음들이 우리가 지금 이곳에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눅눅한 계절을 씻어내는 비단결 같은 온기
욕조의 물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뜻했다. 5월의 창화는 이미 여름의 입구에 들어서 있었고, 창밖의 공기는 눅눅한 습기를 머금어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이디에 모텔의 욕조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매끄러운 온기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사지 제트 분사구가 등을 강하게 밀어낼 때마다, 일상의 긴장으로 꽉 조여져 있던 근육들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하루 종일 발을 옥죄던 신발 끈을 천천히 푸는 기분과 같았다. 둘째는 하얀 물거품을 한 움큼 만들어 수염처럼 턱에 붙이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작은 발가락이 몽글몽글한 거품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단순한 움직임. 그 무의미하고도 평화로운 반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피부에 닿는 물의 감촉은 잘 짜인 비단처럼 부드러웠고, 그 온기는 단순한 온도를 넘어 가족이라는 이름의 안온함으로 다가왔다.
혀끝에서 충돌하는 달콤함과 짭조름한 위로
체크아웃을 앞두고 근처에서 정성스레 사 온 단황수를 꺼냈다. 갓 구워낸 빵의 뜨거운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심장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게 구워진 외피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그 틈으로 진한 붉은 팥소의 달콤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짭조름한 달걀노른자가 혀끝에 닿으며 맛의 정점을 찍었다. 달콤함과 짭짤함이라는 정직한 두 맛의 충돌은 입안에서 작은 축제를 벌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입가에 빵가루를 잔뜩 묻힌 채, 서로가 더 큰 조각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귀여운 다툼을 벌였다. 나는 그들의 소란스러운 경쟁을 흐뭇하게 구경하며 천천히 빵을 씹었다. 화려한 코스 요리나 값비싼 만찬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빵 하나가 주는 심리적 포만감은 무엇보다 컸다. 5월의 습한 공기 속에서 나누어 먹은 이 달콤한 빵은, 여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가장 다정한 위로였다.
소나기 예보를 품은 진한 백합의 숨결
잠시 창문을 열자, 비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오후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직전, 대기가 무겁게 고요해지으며 느껴지는 특유의 전조였다. 그런데 그 눅눅한 습함 사이로 어디선가 진한 백합 향기가 섞여 들어왔다. 누군가 근처에 꽃을 두었는지, 아니면 계절이 보내는 은밀한 신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향기는 매우 강렬하고도 우아했다. 호텔 복도에서 은은하게 풍기던 깨끗한 세제 냄새와 밖에서 불어온 야생의 꽃향기가 섞여 묘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나는 코끝에 닿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젖은 셔츠가 피부에 닿는 찝찝함마저도 이 향기 덕분에 견딜 만한, 오히려 낭만적인 기억으로 변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저 덥고, 습하고, 향기로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조화가 오히려 완벽하게 느껴지는, 충분히 아름다운 오후였다.
아이들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포근한 비누 냄새가 났다.
- 단황수는 식기 전에 드세요. 갓 구운 상태의 바삭함이 맛의 핵심입니다.
- 화려한 인테리어보다 마사지 욕조의 수압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쉬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