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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바퀴 소리가 멈춘 그 지점

캐리어 바퀴 소리가 멈춘 그 지점

로비의 카페트가 발목을 잡을 듯 두툼했다. 캐리어를 끌 때마다 바퀴가 바닥에 닿지 않고 솜사탕 위를 걷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 들었다. 누가 먼저 길을 잃을지 내기를 했지만, 결과는 셋 다 패배. 광활한 로비의 공간감은 우리가 상상한 거리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10월의 교토 밤공기는 뼛속까지 서늘했다. 호텔 바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주문한 따뜻한 차와 작은 화과자 하나. 혀끝에 닿는 밤색의 묵직한 단맛이 온몸으로 퍼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딱 적당한, 절제된 달콤함이었다. 찻잔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른 김이 안경알을 하얗게 덮어 세상이 잠시 흐릿해졌다.
"가벼운 산책이라고 했잖아, 진짜로." 누군가 젖은 운동화를 허망하게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2만 보를 걷고 돌아온 우리에게 '가볍다'는 말은 이미 사전적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다. 서로의 퉁퉁 부은 발목을 보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효율적인 경로를 촘촘하게 짠 계획표는 이미 땀과 눈물에 젖어 구겨진 지 오래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누가 먼저 눕나' 게임. 슈페리어 더블 룸의 넉넉한 공간은 우리 셋이 뒹굴기에 충분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침대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승리의 신호탄처럼 들렸다. 결국 누가 누구의 팔을 베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엉켜 잠들었다. 서로의 체온이 겹쳐지는 그 눅눅하고 따뜻한 안도감.
밤의 단풍 라이트업을 보러 나섰다. 붉은 잎들이 조명을 받아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비현실적인 색을 뿜어냈다. 아무 말 없이 걷는 동안, 옆 사람의 옷깃이 스치는 서걱거리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그 적막이 꽤 다정했다. 억지로 대화를 짜내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는 사실이 가을밤의 공기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ホテルグランヴィア京都의 객실은 정갈함 그 자체였다. 창밖으로는 교토역의 화려한 불빛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지만, 두꺼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의 소음은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하얀 침구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에 닿는 순간, 비로소 여행의 긴장이 풀렸다. 그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완성되는 공간이었다.
예고 없던 가을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이 흠뻑 젖은 채로 로비 라운지에 뛰어 들어왔다. 눅눅하고 차가운 옷가지와 대비되는 라운지의 포근하고 밀도 높은 공기.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이 두꺼운 카페트 속으로 소리 없이 흡수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소란함이 주는 묘한 평온함, 나쁘지 않은 오후였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정처 없이 걷고, 배불리 먹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그렇게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과정이 좋았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더 철저하게 게을러질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얻은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수확이었다.

젖은 운동화가 현관 옆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말라가고 있었다.

  • 로비 라운지의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멍하니 사람 구경하기.
  • 슈페리어 더블 룸의 바스락거리는 시트 속에서 늦잠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