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묘리는 묘한 경계에 서 있었다. 기온은 이십팔 도. 덥다고 하기엔 바람 끝에 서늘한 가을의 전조가 섞여 있었고, 시원하다고 하기엔 정오의 볕이 여전히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우리 셋은 각자의 취향이 담긴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한 명은 빳빳한 지도를 펼쳐 들고 정방향으로 가자며 단호하게 주장했고, 다른 한 명은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가보자며 웃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묵묵히 페달을 밟았다. 귓가에는 자전거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규칙적인 금속음이 리듬처럼 울려 퍼졌고, 길가에 무성하게 자란 이름 모를 풀들이 바퀴에 스칠 때마다 풋풋한 풀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누군가는 앞서 나가 바람을 갈랐고, 누군가는 뒤처져 멍하니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봤다. 억지로 보폭을 맞출 필요가 없는 여행, 그 느슨한 연대감이 주는 해방감이 좋았다.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곧 길이 되는, 그런 무책임한 자유가 우리에겐 필요했다.
길을 잃어 비로소 마주한 따스한 김
결국 지도를 보던 친구가 방향을 잘못 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낯선 골목의 막다른 끝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강기구기'라는 오래된 간판의 가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기에 설렘은 더 컸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진한 간장 냄새와 뽀얀 육수의 증기가 안경 너머 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우리는 완탕과 육원, 그리고 수정교자를 주문했다.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뜬 완탕의 피는 투명할 정도로 얇았고, 그 속에 꽉 찬 고기는 씹을수록 쫄깃한 육즙을 뿜어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온몸의 긴장을 녹일 때,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구월의 찬 바람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스쳤다. 그 극명한 온도 차가 주는 쾌적함에 우리는 동시에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친구 하나가 육원의 소스가 너무 달다며 투덜거렸지만, 정작 젓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보며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린 순간, 나는 깨달았다. 잘못 든 길 끝에서 만난 이 소박한 식사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정직하고 달콤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초록의 파도가 밀려오는 여덟 번째 층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采莓行館Caimei Hotel은 입구부터 안도감을 주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놀라울 정도로 넓은 주차 공간이었다. 옆 차의 문콕을 걱정하며 숨을 죽이고 내릴 필요 없이, 탁 트인 공간에 차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의 해방감을 선사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자, 대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말의 의미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초록의 들판이 지평선까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고, 그 위로 구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금가루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우리가 묵은 디럭스 룸은 약 삼십 제곱미터의 아늑한 공간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한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 침대로 몸을 던졌다. 독립 스프링 매트리스가 몸의 곡선을 따라 묵직하고 부드럽게 받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천장의 깨끗한 흰색과 창밖의 짙은 초록색이 이루는 강렬한 대비를 감상했다. 욕실의 토토 비데는 정교하게 작동했고, 에어컨이 설치된 쾌적한 욕실에서 따뜻한 물을 욕조에 채우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메웠다. 밖에서는 여전히 마을의 소음이 아스라이 들려왔지만, 방 안은 마치 다른 세상인 듯 고요했다. 밤 열 시가 넘자 소음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오직 에어컨의 낮은 웅얼거림만이 남았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침묵, 그것은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대화였다. 푹신한 침구 속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으면, 내가 지금 대만의 어느 작은 마을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실감 났다. 특별할 것 없는 방이었지만, 그곳에서 누리는 무위의 시간은 그 어떤 화려한 일정보다 달콤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나는 아마 이번보다 더 많이 누워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가장 완벽한 여행의 형태니까.
물컵 속에 갇힌 오후의 햇살이 느릿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 자전거를 빌려 대호의 끝없는 초록 들판을 유영하듯 돌아볼 것.
- 8층 객실의 넓은 창가에 기대어 전원의 고요함에 깊이 잠겨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