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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안개 너머, 아이들이 발견한 낯선 세계

창밖에는 끝없이 펼쳐진 산의 능선이 있었다. 11월의 묘리는 안개가 잦아, 세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 많다. 竹美山閣 藝術園區의 커다란 통창 너머로 구름과 안개가 서로를 껴안은 채 느릿하게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인 내 눈에는 그저 습도가 높은 산비탈의 풍경이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전혀 다른 세계를 읽어내고 있었다. 첫째는 갤러리의 유럽풍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코 모양이 자신과 꼭 닮았다고 진지하게 주장했다. 둘째는 기묘한 형태의 조각상 앞에서 그것이 거대한 젤리처럼 보인다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찔러보았다.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이곳은 그저 마음껏 뒹굴 수 있는 넓고 안락한 거실일 뿐이었다. 나는 억지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창밖의 옅은 회색빛 숲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부드럽게 되돌아오는 풍경을 감상했다. 생산성 없는, 그 무용한 시간들이 주는 평온함이 꽤 괜찮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정적을 깨우는 클래식과 원시의 북소리

갤러리 공간에는 오래된 서양 고전 음악들이 낮게 흐르고 있었다. 느린 템포의 선율이 공간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을 때,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발소리였다. 두꺼운 카펫 위를 다급하게 달리는 아이들의 발소리는 둔탁하면서도 리드미컬했다. 마치 작은 짐승들이 숲속을 누비는 소리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원주민 아타얄족의 전통 가무 공연이 시작되자, 묵직한 북소리가 산속의 정적을 단숨에 깨웠다. 아이들은 처음 접하는 낯설고 강렬한 리듬에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공연자와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어떤 정교한 예술적 감상보다 더 생생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다실의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곳에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처럼 들렸다.

서늘한 대리석과 비단처럼 감기는 온천수

객실의 대리석 욕조는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 손끝이 닿았을 때 느껴진 그 서늘한 냉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곧 뜨거운 온천수가 채워지며 온도는 빠르게 변했고, 공간은 뽀얀 수증기로 가득 찼다. 천천히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자 탄산수소염천 특유의 미끄러운 촉감이 피부를 감쌌다. 마치 아주 얇고 부드러운 비단 한 겹을 온몸에 바른 것 같은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둘째는 물속에서 내 발가락을 꽉 잡더니 물고기 같다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호텔 가운을 망토처럼 두르고 복도를 뛰어다녔는데, 가운이 너무 커서 바닥에 질질 끌리는 모습이 마치 작은 요정들 같아 귀여웠다. 11월의 서늘한 산 공기가 젖은 피부에 닿아 소름이 돋을 때쯤, 우리는 다시 뜨거운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교차하는 그 감각의 변주 속에서, 아이들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비누 냄새와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거창한 휴식이라는 말보다, 그저 함께 젖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안심이 되었다.

숲의 숨결을 머금은 소박하고 풍성한 식탁

이곳 竹美山閣 藝術園區는 일박 삼식의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온전히 숲에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묘리 지역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식단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역 특색이 담긴 정갈한 요리들이 테이블 위에 올랐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덥혔다. 아이들은 평소라면 입에도 대지 않았을 낯선 채소 요리들을 '숲의 맛'이라 부르며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밥알의 찰기와 국물의 적당한 온도가 몸속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식사 도중 첫째가 문득 물었다. "엄마, 온천물은 어디서 오는 거야?" 나 역시 정확한 답은 몰랐기에, 그저 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대충 답했다. 아이는 그 말에 납득한 듯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천천히 씹으며, 우리가 지금 이 깊은 산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그 고립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안락함이 우리 가족을 더 밀착하게 만들었다. 배가 부르자 아이들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그 나른한 평화가 식탁 위에 가득 찼다.

레몬 버베나의 상큼함과 찻잎의 깊은 잔향

욕실에서 배어 나온 레몬 버베나 향이 코끝에 잔잔하게 머물렀다. 상큼하면서도 차분한 그 향기는 씻고 나온 뒤의 개운함을 더해주었다. 우리는 곧장 다실로 향했다. 이곳은 묘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찻집이라고 했다. 방 안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은은한 찻잎 향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11월의 산 공기는 날카롭지 않고 적당히 서늘해, 정신을 맑게 깨워주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창밖의 안개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아이들은 다실의 넓은 다다미 공간에서 뒹굴며 장난을 쳤고, 찻잎의 쌉싸름한 향과 아이들의 옅은 땀 냄새, 그리고 숲의 눅눅한 흙내음이 한데 어우러졌다. 특별할 것 없는 향기들이었지만, 훗날 이 냄새만 맡아도 이곳의 짙은 안개가 떠오를 것 같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차를 마시고, 아무런 이유 없이 숲을 바라보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마음의 빈틈을 적당한 온도로 채워주었다.

안개 낀 산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젖어 있었던 시간, 참 좋았다.

  • 럭셔리 룸의 대리석 쌍욕조를 선택해 아이들과 함께 넓은 온천욕을 즐겨보길 권한다.
  • 묘리 최고 고도의 다실에서 멍하니 숲의 안개를 바라보는 시간을 꼭 가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