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에 '新興大旅社'라는 낡은 글자가 바랜 채 붙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얇게 내려앉은 먼지를 긋자 선명한 길이 났다. 우리는 여기서 길을 잃지 않기로 내기했지만, 결국 셋 다 골목 끝 막다른 길에서 서로의 멍청한 얼굴을 마주했다. 눅눅한 공기 속에 섞인 낡은 건물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
강기구기에서 훈툰을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얇은 피 속에 고기가 꽉 차 있었다. 한 입 씹을 때마다 뜨거운 육즙이 톡 터져 혀끝을 자극했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현지인들의 시끌벅적한 대화가 배경음악처럼 깔렸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진한 국물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충분했다.
---
"이게 바로 레트로 감성이라는 거야." 내 말에 친구가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쳐다봤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결과는? 그냥 오래된 거 같은데." 친구의 억울한 표정에 우리는 서로의 안목을 깎아내리며 낄낄거렸다. 낡은 철제의 서늘한 촉감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지만, 그 유치한 논쟁이 우리에겐 가장 익숙한 대화법이었다.
---
인자한 인상의 주인 할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려. 물이 충분히 뜨거워진 다음에 옷을 벗으렴." 너무나 구체적이고 친절한 지침이었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누가 더 빨리 옷을 벗나 내기를 했지만, 결국 셋 다 샤워기 앞에서 멍하니 물 온도를 체크하며 서 있었다. 뚝, 뚝 떨어지는 물소리만 들리는 그 멍청한 정적이 웃음 터지게 했다.
---
3월의 오후 햇살이 천정 안으로 비스듬히 쏟아졌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이 금빛 조명을 받은 듯 반짝이며 춤을 췄다.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그 빛의 줄기 속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여기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했겠지만, 그냥 햇볕이 좋았을 뿐이다. 무용한 시간 속에 잠기는 쾌적한 나른함이었다.
---
발바닥에 닿는 테라조 바닥은 차갑지만 매끄러웠다. 욕실의 작은 모자이크 타일들은 어린 시절 할머니 댁 욕실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무늬였다. 물때 하나 없이 반짝이는 타일 위로 은은한 비누 향이 감돌았다. 낡았음에도 이토록 깨끗하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닿아 있는 누군가의 지극한 성의라는 뜻이다. 그 정갈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눌러주었다.
---
이곳이 원래 잡화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잃은 여행자들이 잠시 쉴 곳을 물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여관이 되었다고 한다. 거창한 기획이나 세련된 마케팅 없이, 오직 필요에 의해 태어난 공간. 그래서일까, 新興大旅社의 공기는 억지로 꾸며낸 친절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환대로 가득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집 같은 포근함이었다.
---
화려한 호텔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보다, 발소리가 울리는 이 낡은 복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3월의 며칠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이곳에 함께 있었다. 서로의 어깨가 닿는 거리에서 나눈 시시한 농담들이 공간의 빈틈을 채웠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느리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낡은 열쇠 하나가 묵직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 강기구기의 훈툰과 고기완자는 꼭 먹어봐, 육즙이 예술이야.
- 묘리역에서 숙소까지 이어지는 고요한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