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위에 그려낸 우리들만의 작은 지도
17층 객실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신베이의 스카이라인은 1월의 서늘한 공기 덕분에 유난히 투명하고 날카로웠다.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거대한 회로판 위에 촘촘하게 박힌 납땜처럼 얽혀 있었고, 그 사이로 흐르는 자동차의 전조등은 혈관 속을 흐르는 빛의 파편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차가운 유리창에 코를 바짝 붙인 채, 누가 더 반짝이는 불빛을 많이 찾아내는지 내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몽글몽글 뿜어져 나왔고, 그 온기가 창문에 닿아 뿌연 성에를 만들었다. 둘째가 작은 손가락으로 그 성에 위를 조심스레 긁어 정체 모를 구불구불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빠, 여기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야!" 아이가 그린 것은 지도였을까, 아니면 그저 무의미한 선의 나열이었을까.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서서 아이의 손가락 끝이 움직이는 궤적을 관찰했다. 특별할 것 없는 도시의 풍경이었지만, 차가운 유리와 따뜻한 체온이 만나는 그 접점에서 발생하는 작은 소란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도시의 소음은 17층 높이까지 차마 올라오지 못하고 저 아래에서 웅성거렸고, 우리는 그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빛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뭉툭하게 잦아드는 복도의 다정한 발소리
객실을 나서자 Jie Shi Bao Jiu Dian 복도의 두툼한 카펫이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아이들이 흥분해 뛰어다녀도 발소리는 날카롭게 튀지 않고 뭉툭하게 뭉쳐져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둘째가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잡아끌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아빠, 온천수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땅속에 거대한 빨대가 꽂혀 있는 거야?" 아이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나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때로는 정답을 공유하는 것보다, 함께 모르는 상태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훨씬 더 다정한 소통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의 낮은 웅성거림, 엘리베이터가 층수에 도착했을 때 울리는 맑고 가벼운 신호음, 그리고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나누는 비밀스러운 대화들. 그런 소리들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귓가에 머물렀다. 965번 버스를 타러 가기 전, 현관에서 아이들이 신발 끈을 묶으며 내는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화 끈이 엉켜 매듭이 엉뚱하게 커졌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 소란스러운 정적이 주는 평온함이 좋았다.
비단 한 겹을 두른 듯한 매끄러운 온기
Jie Shi Bao Jiu Dian의 탄산천에 몸을 깊숙이 담갔을 때, 가장 먼저 피부를 자극한 것은 물의 낯선 질감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아주 얇은 비단 한 겹을 온몸에 얇게 바른 것처럼 미끄럽고 부드러웠다. 약산성의 수치라는 과학적인 설명은 머릿속에서 금세 지워졌고, 몸은 그저 이 매끄러운 감각이 주는 안락함에 온전히 반응했다. 17층 높이에서 도시의 소란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온천욕은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묘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이어 홋카이도 블랙 실리카 암반욕 위에 몸을 뉘었다. 등 뒤에서 전해지는 묵직하고 깊은 열기가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천천히 퍼져나갔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몸의 모든 긴장이 툭, 하고 내려놓아지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아이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호텔 가운에 파묻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소매가 너무 길어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물과 뜨거운 돌, 그리고 보들보들한 가운의 촉감.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피부 밖에서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다정한 온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간결하고 정돈된 객실의 분위기는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들까지 함께 비워내 주었다.
김 서린 안경 너머로 마주한 진한 풍미
2층 탄 쇼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진하고 구수한 육수 냄새가 코끝을 강렬하게 찔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훠궈 냄비에서는 하얀 김이 폭포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안경을 쓴 내 시야는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어 옆에 두자, 그제야 선명하게 드러나는 고기의 섬세한 마블링과 싱그러운 채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고기 한 점을 누가 먼저 건져 먹느냐를 두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젓가락이 서로 엉키고, 붉은 국물이 튀어 옷에 작은 점이 찍혔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기의 식감과 함께 겨울의 한기가 조금씩 밀려나갔다. 뒤이어 방문한 선 베르노의 채식 요리는 정반대의 감각을 깨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혀끝에 은은하게 남았고, 신선한 채소의 아삭함이 씹힐 때마다 몸속의 독소가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아이들의 입가에 묻은 육수 자국과 만족스럽게 늘어진 몸짓.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얼굴에 그런 사소하고 사랑스러운 흔적들을 남기는 일이었다.
겨울바람의 끝에서 만난 커피의 잔향
로비에 들어설 때면 항상 느껴지는 특유의 정돈된 향기가 있었다. 그것은 갓 세탁해 햇볕에 말린 리넨의 깨끗한 냄새 같기도 했고, 잘 닦인 대리석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향 같기도 했다. 밖에서 묻혀온 1월의 차가운 겨울바람 냄새가 옷깃에 남아 있다가, 호텔의 온기와 만나 서서히 흩어지는 과정이 느껴졌다. 선 베르노에서 풍겨오는 진한 이탈리안 커피 향은 복도 끝까지 길게 늘어져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볶은 원두의 쌉싸름한 향이 온천탕의 은은한 미네랄 냄새와 섞여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젖은 수건에서 나는 깨끗한 세제 냄새와 아이들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달콤한 샴푸 향이 한데 뒤섞였다.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고급 향수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집'이라는 안식처와 '여행지'라는 설렘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냄새였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와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따뜻한 커피 향의 선명한 대비. 그 감각의 차이가 우리가 지금 이곳에 함께 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침대 위에 네 사람이 엉켜 누워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965번 버스를 타고 지우펀의 붉은 등불 사이를 거닐어 보길 권한다. 호텔에서 정류장까지 걷는 10분이 꽤 짧다.
- 17층 탄산천에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라. 복잡한 생각을 비우기에 최적의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