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시트: 갓 세탁한 비누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보드라운 감촉. 우리가 쏟은 감자칩 부스러기가 마치 타이중의 복잡한 지도처럼 흩어져 있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시시한 말싸움과 갑작스러운 웃음보, 그리고 눅눅한 오월의 공기를 함께 견뎌낸 넓은 평원 같은 목격자였다.
에어컨 리모컨: 손끝에 닿는 매끄럽고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24도와 26도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영토 전쟁의 중심지였다. "조금만 더 낮추자"는 외침과 "춥다"며 이불을 끌어당기는 몸짓, 그 유치한 다툼의 소음이 리모컨의 작은 버튼 위에 켜켜이 쌓였다.
전신 거울: 테두리가 약간 낡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리 표면. 타이중 식물원으로 떠나기 전, 서로의 옷차림을 품평하며 낄낄거리던 우리의 엉뚱한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억지로 지어 보인 멋진 표정과 곧바로 터져 나온 비웃음, 그 찰나의 진실들이 거울 속에 얇은 막처럼 겹쳐 있었다.
암막 커튼: 묵직한 천의 무게감이 주는 안도감. 커튼을 치는 순간, 바깥의 습한 열기는 차단되고 우리만의 폐쇄적인 낙원이 완성됐다. 창밖으로는 5월의 소나기가 투둑투둑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좁은 방 안에서 뒹굴며 세상의 모든 소란을 잊었다.
수건: 피부에 닿는 적당히 빳빳하고 청결한 촉감. 마카롱 공원의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뒤, 땀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던 그 순간의 서늘한 쾌적함. 젖은 수건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비로소 우리는 오늘의 무모한 모험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 가구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고발한다면
이 방의 가구들이 입을 열 수 있다면, 아마 우리를 '낭만과는 거리가 먼 소란스러운 불청객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Tai Zhong Ai Lian Lv Dian taichung amour hotel이라는 이름은 더없이 로맨틱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낭만보다는 생존과 유희, 그리고 지독한 게으름에 가까웠다. 5월의 타이중은 공기가 무겁다. 습도 78퍼센트의 끈적한 공기는 피부에 착 달라붙어 우리를 계속 밖으로 밀어냈고, 우리는 그 열기를 피해 호텔의 따뜻한 조명 아래로 숨어들었다. '우리가 정말 여행을 온 걸까, 아니면 그냥 게으름의 장소를 옮긴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듯 마카롱 공원을 찾아갔고 보웅 어락 부두에서 낚시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계획에 없던 길로 접어들어 길을 잃을 때마다 우리는 이것이 진짜 모험이라며 서로를 다독였지만, 사실은 그저 방향 감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호텔 내의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음식 냄새와 객실의 안정적인 와이파이 신호는 우리가 다시 돌아올 안식처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백합 꽃향기는 눅눅한 바람 속에서도 선명하게 코끝을 스쳤다. 방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강하게 틀고, 얼음이 가득 담긴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오늘 우리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복기하는 시간. 그 무용한 대화들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방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편안하게 서로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눅눅한 오월의 끝, 서로의 젖은 어깨를 보며 우리는 아이처럼 웃었다.
- 마카롱 공원의 타워 미끄럼틀은 꼭 타볼 것. 생각보다 빠르고 쾌적하다.
- 호텔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현지 음식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