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체크인 기계의 차가운 푸른 빛 앞에서 우리 셋의 손가락이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누가 더 기계치인지 겨루는 무언의 내기라도 하듯, 멍하니 화면만 응시하던 찰나였다. 그때 카운터의 직원이 다가왔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문제를 해결해 준 그녀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툭 던지는 말투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인상은 그렇게 묘한 온도차로 시작됐다.
제2시장의 아치 복주면에서는 하얀 김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쫄깃한 면발 사이사이로 짭조름한 고기 소스가 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감칠맛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멈췄다. 11월의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국수의 온기는 생각보다 더 정직하고 위안이 되는 맛이었다.
호텔 이름이 Tai Zhong Ai Lian Lv Dian taichung amour hotel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한동안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야, 여기 분위기 너무 핑크핑크한 거 아냐?" 누군가의 헛웃음에 민망함이 섞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객실은 예상외로 담백하고 넓었다. 가방 세 개를 아무렇게나 던져두어도 발 디딜 틈이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의 섣부른 예상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푹신한 침대 위로 동시에 몸을 던졌다.
슈페리어 트리플룸에서는 치열한 침대 쟁탈전이 벌어졌다. 더블베드 하나와 싱글베드 하나. 누가 좁은 곳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유치한 가위바위보가 이어졌다. "제발, 제발!" 간절한 외침 끝에 결국 진 사람이 싱글베드에 누웠지만, 몸을 감싸는 포근한 매트리스의 촉감 덕분에 불평은 금세 잠잠해졌다. 그 방의 공기는 적당히 소란스럽고, 기분 좋게 아늑했다.
추홍구 생태공원의 고요해지은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11월의 햇살은 피부에 닿을 때 적당히 미지근했고, 공기 중에는 젖은 흙 내음이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이런 초록색 구덩이가 있다는 게 조금 생경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무런 목적 없이 걷다가 낡은 벤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낮은 속삭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샤워실의 수압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피부를 강하게 때리는 뜨거운 물줄기가 하루 동안 쌓인 묵직한 피로를 씻어내리는 기분이었다. 빳빳하고 깨끗한 흰 수건의 촉감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비누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럭셔리함은 없었지만, 무료 와이파이로 내일의 경로를 검색하며 느끼는 이 쾌적함이면 충분했다.
다시 로비로 내려왔을 때, 장발의 여직원이 우리를 알아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다시 오셨네요." 그 짧은 한마디가 공기 중에 흩어지는 순간, 낯선 도시의 호텔이 갑자기 익숙한 집처럼 느껴졌다. 거창한 환대는 아니었지만, 타지에서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웠다.
침대에 누워 낮은 조도의 천장을 바라봤다. 인생의 60% 정도의 힘만 쓰며 흘러가는 여행.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귓가를 간지럽히는 친구들의 낮은 웃음소리와 적당한 온도의 방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행복이었다. 다시 Tai Zhong Ai Lian Lv Dian taichung amour hotel에 온다고 해도 나는 아마 비슷하게 게으름을 피울 것이고, 그 나른함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창밖으로 타이중의 밤공기가 보랏빛으로 낮게 깔려 있었다.
- 추홍구 생태공원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벤치에 누워 하늘 보기
- 제2시장 아치 복주면에서 고기 소스 듬뿍 얹은 면 요리 꼭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