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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보다 강렬했던 한밤의 허기

9월의 타이중은 낮의 열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묘하게 서늘한 공기를 채워 넣는다. 우리는 Da He Ding Ji Du Jia Zhuang Yuan의 넓은 거실, 발끝에 닿는 부드러운 카펫의 감촉을 느끼며 둥글게 모여 앉아 유치한 내기를 시작했다. 누가 먼저 배고픔을 인정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지는 사람이 내일 아침의 커피를 책임지기로 한, 아주 사소하고도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었다. 하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청량한 밤바람은 생각보다 정직했고, 정원의 젖은 흙 내음은 잠들어 있던 식욕을 집요하게 자극했다. 결국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모두가 백기를 들었다. 우리는 패배를 인정하고 시내에서 서둘러 사 온 아치네 복주면과 몇 가지 간식들을 야외 주방의 매끄러운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흩어놓았다. 눅눅해진 비닐봉지 너머로 풍겨오는 짭조름한 고기 고명의 향기가 밤공기를 타고 진하게 퍼져 나갔다.

면발 사이로 흩어지는 무용한 진심들

"야, 너 아까까지는 절대 안 배고프다고 호언장담했잖아. 그 기세는 다 어디 갔어?"

누군가 낄낄거리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대답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복주면의 쫄깃한 면발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올렸다. 뜨겁고 짭짤한 육수가 입안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배고픈 건 생리적인 현상이지.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은 잘해요. 근데 우리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누가 가자고 했던 그 공원은 갈 거야?"

"몰라. 그냥 누워 있자. 내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여기 침대에 최대한 오래 붙어 있는 거였으니까."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게으름을 칭찬하며 낄낄거렸다. 누군가는 이번 여행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겠다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눈앞의 면발이 얼마나 탱글거리는가 하는 점이었다. 거실 한구석에 놓인 전자 마작 테이블이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우리의 무용한 대화를 비추고 있었다.

"근데 여기 꼭대기 층 방은 화장실이 없더라? 진짜 엉뚱한 설계 아니야?"

"그게 이 집의 매력이지.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를 걷는 그 시간이 바로 강제 운동 시간인 거야. 생각해보면 꽤 합리적인 건강 설계 아니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특별한 위로나 격려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의 뻔뻔함을 확인하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넉넉한 품의 셔츠 속에 몸을 숨긴 것처럼, 우리는 Da He Ding Ji Du Jia Zhuang Yuan의 무심하고도 아늑한 분위기 속에 편안하게 기대어 있었다. 9월의 밤은 점점 깊어갔고, 우리의 대화는 더욱 쓸모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이곳까지 온 진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온기 뒤에 찾아온 투명한 정적

식사가 끝나고 빈 그릇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기분 좋은 정적이 찾아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야외 욕조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낮 동안의 피로가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흩어졌다. 피부에 닿는 물의 온도는 정확히 적당했다.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다정함. 젖은 얼굴 위로 서늘한 밤바람이 스치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고, 그 대비가 오히려 몸의 온기를 더 선명하게 느끼게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타이중의 밤하늘은 서울보다 조금 더 깊고 진한 남색을 띠고 있었다. 물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이 모두 무의미해졌다. 몸을 감싸는 무심한 면직물의 감촉처럼, 온천수는 내 피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 않았고, 침묵을 어색해하는 이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호흡으로 따뜻한 물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한 빌라의 외벽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강요하지 않았고, 그저 거기 있었다.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가득 차 있는 기분. 다시 이곳에 온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 물속에 누워 있을 것 같다.

달빛이 젖은 타일 위로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 아치네 복주면의 짭조름한 고기 고명과 쫄깃한 면발의 조화
  • 도시의 소음이 닿지 않는 가을 밤, 추홍곡 생태공원의 낮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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