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일중 야시장의 화려한 네온사인 쪽으로 망설임 없이 튀어 나갔다. 2월의 타이중 공기는 갓 씻어낸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서늘했다. 기온은 17도쯤 되었을까. 아이의 작은 운동화 끈이 풀려 바닥에 힘없이 끌리고 있었지만, 호기심에 사로잡힌 아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그 뒷모습을 느긋하게 뒤따랐다. 길가에서 풍겨오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간식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서늘한 바람에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특별할 것 없는 거리였지만, 앞서 달려가는 아이의 작은 어깨를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몽글몽글한 온기가 차올랐다.
소란스러운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Lai Lai Shang Lv의 침구는 빳빳하게 잘 말려진 셔츠처럼 깨끗하고 쾌적했다. 짐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파묻혔다. 천장의 하얀 무늬를 하나둘 세고 있으니, 비로소 낯선 도시에서의 여행이 실감 났다. 문밖은 여전히 도시의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방 안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고치 속에 들어온 것처럼 평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무용한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갈구했던 조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복도 끝에서부터 아이들의 발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첫째와 둘째가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며 투닥거리는 소리. 평소라면 한숨부터 나왔을 소음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마저도 여행의 배경음악처럼 다정하게 들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중의 스카이라인은 낮게 깔린 우윳빛 안개에 가려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시의 소음이 두꺼운 필터를 거친 것처럼 뭉툭하게 들려오는 순간,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냥 이 정적 속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아침 식사 테이블 위에는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향기와 진한 커피 향이 낮게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입가에 붉은 잼을 묻힌 채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화려한 성찬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식사만으로도 충분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빵의 따스한 온기가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웠다.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들이켜며 창밖을 보았다. 2월의 햇살이 얇은 커튼의 틈을 뚫고 들어와 식탁 위에 가느다란 금색 선을 긋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아침이었다.
오후의 빛은 꿀처럼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방 안의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며 벽면을 타고 오르는 과정을 가만히 관찰했다. 아이들은 침대 위에서 뒹굴며 장난을 쳤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빛의 입자와 함께 공중에서 흩어졌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이 한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서로의 존재감만이 남았다. 빛이 바닥을 가로질러 문턱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그저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 함께 머물렀다.
머리맡에 놓인 콘센트를 보았다. 침대 양옆으로 세심하게 배치된 어댑터 소켓들이 보였다. 무거운 멀티탭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각각 꽂아두고, 우리는 다시 깊은 잠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체크아웃을 할 때 스태프가 건네준 차가운 생수 한 병과 작은 간식. 대단한 환대는 아니었지만, 그 무심한 듯 다정한 친절이 마음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2층 헬스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던 기억과 함께,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던 일상의 피로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모든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서로의 체온이 느껴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 우리는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번 여행이 꽤 괜찮았다는 사실을, 소란스럽고 때로는 지쳤지만 결국은 행복했다는 결론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포근한 어둠이 우리 가족을 감싸 안았고, 마음속에는 말로 다 못 할 충만함이 차올랐다.
잠든 아이의 콧등 위에 내려앉은 옅은 달빛.
- 일중 야시장의 인파가 부담스럽다면, 호텔 근처의 작은 골목길을 먼저 걸어보세요.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작은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 체크아웃 후 제공되는 생수를 챙겨 타이중 공원까지 가벼운 산책을 즐겨보세요. 2월의 공기가 가장 쾌적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