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너무 덥지?" 그가 셔츠 깃을 펄럭이며 물었다.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혀 떨어지는 찰나였다. "응, 정말." 내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7월의 타중은 햇빛이 하얗다. 빛이 쏟아지는 게 아니라 거대한 압력처럼 피부를 꾹 누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빨리해 Taichung One Hotel 로비로 들어섰다.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그가 에어컨 바람이 닿는 곳에 멈춰 서서, 마치 구원이라도 찾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이 서늘한 공기 속에 영원히 박제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유리 벽이 빚어낸 서늘한 안식
Taichung One Hotel의 외관은 도시의 열기를 튕겨내는 거대한 얼음 결정체 같았다. 매끄러운 유리 커튼월이 태양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주었고, 지하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압도적인 층고는 답답했던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틔워주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함께 쾌적한 냉기가 감돌아, 이곳이 현실과는 분리된 다른 차원의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객실의 문을 닫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진공 상태처럼 한순간에 소멸했다. 우리는 미리 짜놓은 빽빽한 일정표를 과감히 지웠다. 7월의 여행에서 가장 효율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달콤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침대 옆에 놓인 벨벳 의자는 몸을 깊숙이 받아주는 부드러운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 세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며,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심심해진 우리가 TV에 스마트폰 화면을 연결하려 했을 때, 넷플릭스의 투사 버튼이 자꾸만 끊겼다. 화면이 멈춘 곳에는 하필이면 영화 속 인물의 아주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크게 잡혀 있었고, 우리는 그 찰나의 정적 끝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공기는 솜사탕처럼 가벼워졌고 우리의 관계는 한층 더 말랑해졌다.
잠시 밖으로 나가 타중 공원을 걸었다. 1903년에 조성되었다는 오래된 공원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인공 호수가 있었다. 물 비린내와 짙은 녹음의 냄새가 습한 공기에 섞여 코끝을 스쳤다.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저녁으로는 퀑이궈 훠궈를 먹었다. 뜨거운 김이 안경을 뿌옇게 덮어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혀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몸 안의 모든 긴장이 눈 녹듯 풀렸다. 밖은 타는 듯이 덥고 안은 끓어오르듯 뜨거운, 이 묘한 온도 차의 조화가 여행의 정취를 더했다.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와 창가에 섰다.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가만히 대보았다. 유리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하얗게 달궈져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내 이마에 닿는 감촉은 서늘하고 명징했다. 이 극명한 온도 차이가 주는 안도감이 좋았다. 넓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며 나누는 특별할 것 없는 대화들. 그저 여기,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빈틈이 촘촘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시 이불 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 넷플릭스를 켜고 가장 편한 의자에 기대어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봐.
- 비가 오면 억지로 나가지 말고, 창가에 앉아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를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