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난장판과 낄낄거림
"너 진짜 우산 안 가져온 거야?"
"가져왔는데! 차 뒷좌석 어디쯤에 있을걸."
"와, 진짜 칭찬한다. 지금 밖은 그냥 거대한 수영장인데!"
"웃지 마. 너도 아까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 다 녹아서 손목까지 끈적거리잖아."
"그건... 날씨가 너무 덥잖아!"
우리는 서로의 젖은 어깨를 보며 낄낄거렸다. 8월의 타이중은 공기 자체가 눅눅한 물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속까지 습기가 차오르는 찜통 같은 날씨, 뺨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의 촉감과 코끝을 찌르는 젖은 아스팔트의 비릿한 냄새가 뒤섞였다. 엉망이 된 몰골로 서로를 비웃는 이 순간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계획이었기에, 우리는 젖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웃음 섞인 욕설을 내뱉었다. 빗줄기가 시야를 가렸지만, 함께 젖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낄낄거리며 호텔 입구로 들어섰다.
수직의 고요가 주는 완벽한 요새
Yu Yuan Hua Yuan Jiu Dian의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압도한 것은 17층 높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책장이었다. 책의 내용은 읽지 않았다. 그저 수직으로 뻗은 공간이 주는 정적과 압도적인 높이가 주는 경외감에 잠시 멍해졌을 뿐이다. 로비에 감도는 은은한 우디 향이 빗물 냄새를 지워주었다.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발아래로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과 도시의 소음을 관찰했다. 가속도가 붙으며 몸이 살짝 뜨는 기분과 함께 우리는 16층 럭셔리 룸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쾌적한 냉기가 눅눅했던 피부를 기분 좋게 감싸 안았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대형 침대는 마치 하얀 구름 섬 같아서, 셋이서 굴러다녀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넉넉한 거리감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책상 위 자석 충전 패드에 스마트폰을 툭 올리자 '틱'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 작은 소리가 이곳에 완전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다. 로즈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섞인 쌉쌀한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웠다. 매끄러운 물결이 피부에 닿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중의 스카이라인은 소나기가 지나간 뒤 옅은 안개에 싸여 몽환적이었고, 네온사인 불빛들이 물기 어린 유리창에 번져 보석처럼 빛났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의 감촉은 포근한 품처럼 우리를 끌어안았다. 호텔 내의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돌아온 뒤 마주한 이 고요함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보상이었다. 에어컨의 낮은 기계음만이 공간을 채우는 이 방은, 세상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우리를 격리해 주는 완벽한 요새 같았다.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내일의 식욕
"야, 내일 아침엔 윈저 카페 가서 송엽게 다리 진짜 다 먹을 거야."
"말은 잘하네. 너 어제 펑자 야시장에서 떡볶이 먹고 배불러서 더 못 먹는다며."
"그건 어제고. 내일은 위장이 리셋됐거든."
"그래, 내일은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나 하자. 지는 사람이 체크아웃 때 짐 다 들어."
조명이 낮아진 방 안, 우리는 침대 위에 흩어져 누웠다. 낮의 소란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낮고 진솔한 목소리만 남았다. 거창한 깨달음이나 여행의 의미 같은 건 찾지 않았다. 그저 이 넓은 침대에서 서로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천장을 보는 것. 두툼한 듀베의 무게감이 몸을 지그시 눌러주어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베개에 깊숙이 파묻힌 머리칼 사이로 은은한 샴푸 향이 스쳤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우리는 더 편안해졌고, 내일의 뷔페 메뉴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만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로의 못난 점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무방비한 공간에서의 대화 덕분일 것이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옅은 안개 속으로 조금씩 흐릿해지는 밤이었다.
- 윈저 카페의 송엽게 다리 뷔페를 위해 전날 저녁은 최대한 가볍게 먹을 것.
- 호텔 셔틀을 이용해 펑자 야시장의 활기찬 소란함 속에 몸을 던져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