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타이중은 생각보다 서늘했다. 목도리를 여러 번 고쳐 맸음에도 틈새를 파고드는 바람에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지도를 보며 헤매던 우릿구의 조용한 주택가, 표지판조차 불친절한 그 낯선 골목에서 우리는 서로의 보폭이 맞지 않아 자꾸만 발끝이 부딪혔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무겁게 느껴지던 찰나, 타이중 고속철 모텔의 주인장과 그의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의 눈가에 잡힌 인자한 주름과 따뜻한 목소리는 낯선 땅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단숨에 지워주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줄이 툭, 하고 느슨해지는 순간이었다. 로비의 은은한 나무 향과 낮은 조명이 우리를 감쌌고, 무거운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자 비로소 우리가 도착했음이 실감 났다. 바닥에 놓인 두 개의 가방 사이, 그 적당한 거리가 마치 우리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져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보폭이 닮아가는 짧은 통로
방으로 향하는 복도는 짧았지만, 그곳에서 세상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직 두 사람의 규칙적인 발소리만이 고요한 공기를 채웠다. 왼쪽, 오른쪽.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우리는 같은 리듬으로 걷고 있었다. 벽면의 담백한 질감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굳어 있던 긴장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공기는 적당히 차분했고, 손끝에 닿는 서늘한 감촉이 오히려 정신을 명료하게 깨웠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서 걷는 사람의 등과 뒤따르는 사람의 시선이 교차할 뿐이었다. 느려진 속도만큼 서로의 존재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일종의 전이 지대였다.
오직 우리만 존재하는 하얀 정적
문이 열리자마자 펼쳐진 것은 눈이 시릴 만큼 정갈한 하얀 세계였다. 바스락거리는 깨끗한 침구의 감촉과 군더더기 없는 가구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가장자리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매트리스의 적당한 탄성이 지친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건식과 습식이 분리된 욕실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에 차갑게 식어 있던 손끝을 녹이며, 비로소 이곳이 우리의 안식처임을 깨달았다. 뽀얀 수증기가 욕실을 가득 채울 때쯤,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며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미리 사 온 파파야 우유를 나누어 마셨다. 혀끝에 닿는 달콤함 뒤에 오는 쌉싸름한 여운이 꼭 2월의 날씨 같았다. 천장의 무늬를 세며 나란히 누워 있자니, 서로의 호흡이 어느덧 하나의 박자로 겹쳐졌다. 누군가 억지로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냥 좋은 걸 좋다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 넓은 방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아주 천천히, 아주 깊게 숨을 내뱉었다. 무용한 시간이 주는 최선의 사치였다.
창 너머로 흐르는 세상의 속도
창가에 서자 2월의 타이중이 짙은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세상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흐릿하게 번져 있었고, 멀리 바구아산의 등불 축제가 희미한 주황빛 잔상으로 일렁였다. "저 빛, 예쁘네."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섞인 안도감. 긍정의 말은 길 필요가 없었다. 짧은 문장 하나면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서로의 어깨가 살짝 맞닿은 채로, 우리는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이 더 편안했다. 창유리의 서늘한 냉기와 방 안의 온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 이 적당한 거리와 온도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를 느꼈다. 밖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햇살이 발등 위에 머물렀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2월의 서늘함이 우리를 더 가까이 밀어 넣고 있었다.
발등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다정했다.
- 바구아산 대불 풍경구의 월영등제에서 은은한 등불 사이를 거닐어보길 권한다.
- 지역 시장의 쫄깃한 육원에 달콤하고 끈적한 소스를 얹어 맛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