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의 12월은 예상보다 건조했고, 공기는 섭씨 18도의 적당한 미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마치 누군가 세심하게 온도를 맞춰놓은 듯한 날씨였다. 우리는 특별한 계획 없이 He Ti Jiu Dian의 로비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는 순간, 코끝을 스친 것은 갓 세탁한 리넨의 정갈한 냄새와 호텔 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쌉싸름한 커피 향, 그리고 아주 옅은 종이 냄새였다. 로비 한쪽 벽면을 거대하게 채운 '십본서당'의 책 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취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그 거대한 지식의 성벽 앞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사실 아무런 생산성 없는 무용함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 무용함이 주는 해방감이 좋았다. '그냥 아무거나 골라볼까?' 당신이 나지막이 속삭이며 손끝으로 책등을 천천히 훑었고, 나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아주 낯선 주제의 책 한 권을 함께 골랐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고요한 로비의 공기를 부드럽게 갈랐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거리감이었다. 호박색의 부드러운 햇살이 우리의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 빛의 조각 속에 한동안 머물렀다. 대단한 발견은 없었지만, 같은 페이지의 문장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지루한 대기 시간이 오히려 이번 여행의 가장 밀도 높은 중심이 된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은, 아니 꽤 근사한 시작이었다.
밤 11시, 차가운 밤공기를 씻어낸 온기의 시간
저녁에는 근처 한시 야시장을 걸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기름진 길거리 음식의 진한 냄새, 그리고 가끔씩 뺨을 때리는 서늘한 겨울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소란스러운 활기 속에 적당히 걷고, 적당히 먹고, 기분 좋게 지쳤을 때쯤 다시 He Ti Jiu Dian의 방으로 돌아왔다. 휴식과 여유를 강조한 객실답게 방 안은 쾌적했고, 조명은 낮게 고요해져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의 수압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뭉친 어깨와 등에 닿는 순간, 야시장의 소란함과 겨울의 한기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피부를 때리는 물줄기의 촉감이 정교했고, 욕실 안은 금세 뽀얀 수증기로 가득 찼다. 씻고 나와 마주한 드라이기의 바람은 또 얼마나 강력하던지. 젖은 머리카락이 빠르게 말라가는 동안,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서로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진짜 많이 걸었지?"라는 짧은 말 속에 오늘의 모든 피로와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하얀 시트가 팽팽하게 당겨진 침대에 몸을 던졌다. 면직물의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감촉이 등에 닿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우리는 불을 끄고 깊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특별한 대화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 공간이 주는 안락함, 그리고 곁에 누워 있는 당신의 온기면 충분했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정적을 온전히 누리기로 했다. 12월의 타이중, 이름 모를 호텔의 방 안에서 우리는 가장 평범하고도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시 이곳에 온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당신 곁에 누워 있을 것 같다.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이 아주 조금, 우리 사이를 비추고 있었다.